2013. 3. 31.

블로그를 시작하며



1.
AOL, MSN 메신저, 버디버디 등 '메신저' 놀이에 한참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컴퓨터만 켜 놓으면 전화 통화 없이도 원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업무 협의와 정보 공유도 직접 얼굴을 보고 하는 것보다 더 신속정확하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도 일을 가장하여 비밀스런 수다를 떨 수 있는 메신저는 그야말로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온라인 대화의 신세계를 내게 열어 주었다.

하지만 메신저가 반갑고 신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귀찮은 누군가를 피해 가끔은 일부러라도 '자리 비움' 표시를 해두어야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면 한참 집중해서 하고 있는 일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메신저는 항상 'on' 상태였지만, 그는 내가 말을 걸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내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가끔 그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가보면 그의 컴퓨터 화면 아래에는 메신저 탭들이 즐비해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싶으면 열심히 입력하고 있던 대화창을 잽싸게 내리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오지 않는 전화보다 침묵의 메신저가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이메일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온라인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
오늘 이 순간까지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 그 흔한 SNS 계정 하나 없이 '스따 (스스로 왕따)'를 즐기고 있던 내가 이렇게 블로그를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책임감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캔버스에서 침실까지, 영국의 오픈 스튜디오를 가다>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고, 여러 자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던 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접선'을 원하시는 분들까지 출판사에다 내 연락처를 물어 보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기꺼이 나를 찾아 주었다.

바쁜 일정들이 끝나가던 연말 즈음, 저자 강연회에 참석한 어떤 분이 남겨 주신 후기가 내 마음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어제.. 강연회 다녀왔습니다. (중략) 작가 강연회도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작가의 생각을 독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오픈 스튜디오'가 아닐까.. 생각 드네요. 좋은 기회 감사합니다."

오픈 스튜디오를 매개로 하여 소통하고 성장하는 예술가와 대중의 이야기를 300페이지 가량의 책으로 쓰면서 수없이 '오픈'을 외쳐댔던 내가, 정작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는 창구 하나 열어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나조차도 원하는 것이 제때 찾아지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으면 금세 포기하고 잊어버리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과 인내심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일이란 말인가? 온라인상에서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내게 주었던 안 좋은 경험의 기억보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세상과 대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나를 다시 '오픈'하기 위해 마음을 추스르고,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플랫폼이 적합할 지 고민하는 사이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3.
수집하고 정리하는데 그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지만, 글로 기록하는 일에 그동안 게을렀던 것은 사실이다. 하긴 지난 몇 년 동안 앉아 있는 시간보다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다. 상자, 책꽂이, 화일 박스, 노트북과 외장하드, 그리고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들을 더 이상 묵혀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물건, 일, 놀이, 기억, 바람 등 대상과 주제에 상관없이 이제부터는 글로 적어 두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4.
앞으로 이 블로그를 공적인 내용부터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바탕으로 한 즐거운 소통과 의미 있는 공유의 장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블로그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Mooncc's Open Studio'로 정했다. 이곳은 나의 작업실이다. 그리고 나는 '문씨씨'이다.


5.
Welcome to my blog. Are you ready to enjoy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