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29.

로드스꼴라,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로드스꼴라,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세상의모든길들, 2013년


남미 문학을 통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엿보고,
공정무역의 루트를 들여다보면서 거대한 자본의 물결을 읽어내며,
문명의 충돌, 갈등, 화해, 통합, 그리고 융합의 과정을 살펴보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질문을 해 보고,
거대한 자연 앞에 서 보는 것,

을 목표로 남미로 떠난, 길 위의 학교 '로드스꼴라' 친구들의 색다르고 생생한 그리고 너무도 솔직한 기록들.
최근 영국에 다녀 온 로드스꼴라 5기 떠별들의 이야기도 엄청 '익사이팅'하리라 기대합니다^^.

ⓒ 로드스꼴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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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들어온 떠별들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엄마가 아픈데 괜찮으실까요? 우리 가족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연애는 과연 가능한가요? 글을 써서 벌어먹을 수 있을까요? 저 머나먼 대륙 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파릇한 청춘들의 질문에 목이 두껍고 어깨가 단단하며 앞뒤로 두터운 몸통을 지닌 아이마라 아저씨는 끝까지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답을 해주었다. 엄마는 조만간 나으실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가족들은 약간의 고비들이 있지만 그 시간만 잘 넘긴다면 모두 건강하리라, 연애의 대상은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하느니라,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네가 원하는 생을 살리라... 점괘를 받은 떠별들은 모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물러갔다. 참으로 용한 점괘, 에 슬몃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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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대의명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 모여 머무르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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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옌데는 서서히 다시 일어섰다.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던 파울라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더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북돋우며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것일까. 그 밑바닥에는 그녀의 양부가 어린 그녀에게 해 주었던 한마디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너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단다."
그녀는 알았다. 넘어지고 헤매는 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가 겪는 일임을. 외로움과 열등감,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은 세상 모두가 겪는 감정임을. 그래서 두려운 순간이면 항상 마음속에 되새기고는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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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의 내가 배운 글쓰기는 두 단계로 집약될 수 있다. 1단계, 멋진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픽션을 시도하지 말고 자신의 경험을 멋지게 쓴다. 2단계,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자.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말이야 쉽지만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이미 지나온 기찻길을 바라보듯 담담하게 쓰는 일은 여러모로 용기와 내공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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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 알겠다. 방황이라는 게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그건 신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sin prisa!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나는 내 속도에 맞춰 콧노래 부르며 걷다가 예쁜 벤치가 보이면 잠시 쉬고, 막다른 길이 나오면 다시 돌아서고, 갈림길이 나오면 좀 더 끌리는 쪽으로 가면서 내 길을 찾아가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흐릿하게 무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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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든,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은 때때로 두 달 여행의 전부를 삼켜 버릴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고산도시 라빠스의 언덕을 올라갈 때 내쉰 내 지친 숨도, 우유니의 새벽에 본 수많은 별들과 띵고마리아에서 들었던 앵무새의 울음소리조차 모두 격렬한 사랑의 감정 앞에 작은 기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4. 6. 6.

전용일 금속공예전 <사물의 자리> (2014. 6. 5 - 6. 25 / 갤러리 메종르베이지)


전용일 금속공예전 <사물의 자리>
2014. 6. 5 - 6. 25 / 갤러리 메종르베이지


최근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의 소장 작품 목록에까지 이름을 올린, 금속공예가 전용일의 <사물의 자리> 입니다.

정갈하면서도 위트 있는 작품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전시회입니다. 오롯이 외투가 걸려 있는 옷걸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공예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이슈들을 고민하면서,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무엇보다 공예인으로서 자신의 신념과 태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의 '작가 노트'는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듭니다.

조용한 아침, 다시 가서 보고 싶은 전시입니다.


ⓒ 사물의 자리 2014


"여기 30여점의 작품은 주로 손과 손도구로 제작한 공예품이다. 나무를 사용한 몇 점을 제외하면 모두 구리, 구리합금, 은 등 비철금속의 판재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금속판을 성형하는 판금기술이 이들 작업의 중심에 있다. 금속 평판을 망치와 모루(받침쇠)를 사용해 늘여 변형하고, 매끄럽게 고르고, 이들을 서로 이어 붙여 입체의 외피를 만들거나 열린 형태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얼개이다. 금속판을 점진적으로 변형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는 망치질은, 마치 점묘를 통해 서서히 형상을 드러내는 회화 작업과 유사하다. 또한 성형한 각각의 형상을 정교하고 수리적인 접합을 통해 공간 구조물로 구현하는 과정은 한 채의 집짓기와 닮아있다. 금속공예는 가장 얇은 벽으로 지은 건축물과 같다.

이들은 심미성을 앞세운 미술품이면서 동시에 생활공간에서 사용하는 일상 사물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접촉하고 사용하는 대상이다. 사물 속에서 심미성과 기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일은 어렵고도 흥미롭다. 이 과정을 통해 작품 속에는 조화, 절제, 함축이라는 미덕이 담긴다. 기능에 대한 고려가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에 내 작업은 투명하고 명쾌해진다. 자유지상주의자라면 공예가나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나는 사용과 무관한 미술품 속의 아름다움도 즐기지만, 기능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물이 한층 경이롭다. 이들 속에서 종종 시적 함축성을 발견한다. 보는 그림, 읽는 책보다 중요한 것은 내 손으로 쥔 숟가락이나 아내의 손이다.

사물도 자리가 필요하다. 여기 있는 작품들은 갤러리 보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빛을 발하도록 의도된 것들이다. 이들 공예품은, 자리가 바뀌어도 크게 의미가 변하지 않는 자율적인(혹은 순수한) 미술품과 다르다. 공예품은 다른 사물들과 포개진 채 삶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서서히 의미를 드러낸다. 현란한 시각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미술관, 현실과 격리된 화이트큐브 속에서 많은 공예품들이 존재론적 딜레마를 겪는다. 또한 이런 연유로 인해 공예가 변하기도 한다. 이벤트와 퍼포먼스에 골몰하고 실물보다 이미지를 앞세우는 동안, 사물의 자리는 애초 작품의 의도 속에 포함되지 못한다. 사람이 그렇듯 사물도 자리가 필요하다."

- 작가 노트




 






 ⓒ 문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