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5.

시간


훌쩍 20일이 흘렀다.

3주 전, 엄마의 수술 때문에 며칠만 집에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엄마를 돌봐드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족 중 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의 '봉사'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간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수술은 우리 가족 모두의 허를 찔렀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에서 이뤄지는 수술 건수 중 5위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수술이라는 백내장 수술은, 시술만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 수술 후 주의해야 할 사항이 A4 용지 한 장에 빼곡히 적혀있을 정도로 환자가 신경 써야 할 내용이 정말로 많은 수술이었다. 수술 후 절대안정은 물론이거니와 2주일간 세수 등 '물과의 접촉' 금지, 고개를 숙인다거나 몸에 힘을 주는 일도 금지, 2시간 간격으로 두 종류의 안약 투입, 매일~이틀에 한 번꼴인 통원 치료 등 백내장 수술은 시간만 짧았지 결코 간단한 사후관리를 요하는 수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수술 당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수술 후 며칠간 엄마 식사나 챙겨드리고 말벗이나 해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나는, 지난 3주 동안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몸소 겪어내야 했다.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하루 세 끼 밥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평소 두 끼, 그것도 한 끼는 콘플레이크와 우유로 때우고, 나머지 한 끼는 간단하게 해 먹거나 아예 밖에 나가 사먹는 나로서는, 세 번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식후 복용해야 할 약 때문에 한 끼라도 거를 수 없는 엄마를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간단한 메뉴라고 하더라도 매 번 상을 차리는 일은 웬만한 인내심과 노력 없이는 하기 힘든, 반복되는 단순노동인 동시에 창의성마저 필요한 작업이었다. 결코 짬이 안 나는, 읽으려고 가져갔던 책들을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일이, 바로 먹고 치우는 일임을 새삼 격하게 깨달았다.

간호는 또 어떠한가. 2시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아직 시력이 회복되지 못한 엄마를 대신해서 약을 넣어드려야 하고, 먹는 약을 챙겨 드리고, 주무시는 동안 혹여 수술한 쪽 눈 부위가 베게에 닿지는 않는지 '감시'까지 해야 하니, 길어야 1시간 50분 정도의 쪽잠밖에 잘 수 없었다. 잠이 부족하니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그런데 회복은 더디니 과연 내가 제대로 엄마를 돌봐드리고 있는 것인지 회의감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의뢰받은 일까지 처리해야 하니,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고민 끝에 포기하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했었다. 처음에는 손해 보는 것이 너무 많아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싶었는데, 프로젝트를 안 했을 때 할 수 있는 일 및 좋은 점들을 하나하나 적어내려가다보니 그다지 나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강의 준비에도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3주라는 시간이 지났고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아마도 나에게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나는 그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다. 나만을 위한 시간과 다른 누군가를 위한 시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를 따지는 것보다, 다음에도 가질 수 있는 시간인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내 시간을 엄마에게 드렸다. 그리고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