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8.

Borderline by Madonna



You were a golden girl and your song reminds me of my golden years, Madonna!


Borderline Official Music Video HD (1984)

Borderline (Live at Sticky & Sweet Tour Buenos in Aires, 2008)

2013. 4. 26.

Happy Memory



I should have written 'the moment' (photos: 8,061)...


2010. 12. 27 - 2011. 1. 30

Greece: Athens, Hania, Rethymno, Knossos, Iraklio, Nafplio, Mycenae, Corinth, Delphi

Turkey: Istanbul, Selçuk, Ephesus, Pamukkale, Fethiye, Kayakoy, Göreme, Ankara, Safranbolu


 Nafplio ⓒ 문호경


 Kayakoy ⓒ 문호경


Göreme ⓒ 문호경

2013. 4. 24.

소피 칼: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Sophie Calle: Qù et Quand?)


인류 역사 이래 '사랑'과 '이별'만큼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 사고가 또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갖고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고, 사소한 계기로 인하여 푹 빠져들어 커져버린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며 끙끙대고, 그러다가 내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괴로워하고,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가도 자존심과 부끄러움에 망설이며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가 상대방 역시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짜릿함! 그의 고백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느끼는 설렘과 환희!!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사랑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오만가지 즐거움을 맛보고 나면 반드시 이별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헤어지자는 통고를 받고(때론 내가 먼저 끝내자고 해 놓고서)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우아하게 마음을 정리하기보다 "쿨 하지 못해 미안해"를 외칠 수밖에 없는 찌질한 상황이 사실 우리에게는 더 많다. 나 역시 그의 호출기에 녹음된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한 기분을 맛봐야 했고, 미니 홈피에서 그의 근황을 한동안 추적하기도 했으며, 폭언 후에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감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차마 버리지 못해 따로 보관해 두기도 했고(물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면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잊어버리지만), 주고받은 편지와 이메일, 각종 선물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했으며, 그와 함께 했던 행동반경에서 빠져 나와 나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했다. 한 마디로 내 안에 새겨진 그가 무뎌지고 희미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곰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하며 마늘과 쑥으로 연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런데 여기, 저 멀리 구라파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으니, 다름 아닌 나의 이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보자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소피 칼Sophie Calle(1953~)의 <Prenez soin de vous>라는 작품은, 자신의 파트너(우리나라의 남자/여자 친구 또는 애인 보다는 더 친밀한 관계로,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아니지만 법률적/사회적으로 보장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가 헤어지면서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을 가수, 무용수, 기자, 판사, 외교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107명의 여성들에게 보여주고 각자의 전문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서 그 이메일을 해석하도록 한 것이다.

Sophie Calle, Take Care of Yourself2009, exhibition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in Whitechapel Gallery, London ⓒ 문호경


작품 제목 <잘 지내기를 바래요>는 소피의 파트너가 보낸 장문의 이메일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것인데, 소피는 과연 이 '잘 지내요'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정말 나랑 헤어지자는 것인지 아님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게 되지만 다시 나랑 잘 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의 메시지인지 이 '헷갈리는' 문구를 작품의 제목으로 삼아, 다양한 여성들이 이별 편지를 읽고 그것에 대해 각자 반응한 것을 기록한 이 작품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9년에 <Take Care of Yourself>라는 영어판으로 다시 제작되어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2009.10.16-2010.1.3)에서 소개되었고, 올 해 우리나라에서도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본래 이 작품은 그래픽,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표현된 여성들의 107가지 반응을 볼 수 있는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당시 런던에서 살고 있던 나는 이 작품의 '완전한' 상태를 볼 수 있었다. 발레 동작으로 몸을 풀면서 편지를 읽어나가거나 편지를 노래로 부르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방안을 서성이면서 편지를 읽거나 편지를 읽는 도중에 울어 버리고 심지어는 박박 찢어버리는 여성들까지, 소피 칼의 이별 편지 해석(또는 해독) 작업에 초대된 여성들은 자신의 직업적 개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적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이 겪은 이별에 대한 공감의 반응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운 좋게도(?) 나 역시 그즈음 실연의 상실감과 황망함으로 인해 어서 빨리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는데, 수십 개의 모니터가 보여주는 여성들의 태도와 반응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나를 대신해서 슬퍼하고 분노하며 절망하고 미련을 떨다가도 툭툭 털며 일어나 주었고, 연애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나조차도 미처 깨닫지/한 번도 해보지 못한(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이별에 대처하는 기발한 방법들을 몸소 실천해주고 있었다. 특히 전시된 작품 중 한 여의사의 진단은, 마치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려 기어가다시피 겨우 찾아 간 병원에서 맞은 한 방의 주사처럼 내 마음에 쏙 들어와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니오, 저는 당신에게 항기능저하제를 처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당신은 그냥 슬픈 겁니다.
고통을 주는 사건은 반드시 상처를 입히지만, 약물에 의한 해결이 적절한 해법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기에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당신이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는 방책을 당신 안에서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ophie Calle, Take Care of Yourself2009, exhibition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in Whitechapel Gallery, London ⓒ 문호경


이번 한국 전시회에는 프랑스 정보부 직원, 탈무드 해석학자, 그래픽 디자이너, 치프 서브에디터, 출판 에이전시, 동화작가, 유엔 여성인권 전문가 등 총 7명의 여성이 해석한 작품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이번 전시회가 <잘 지내길 바래요>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전시장의 규모/비용/작품의 판매가능성 등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해서 몇 작품만을 골라 전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 지내길 바래요> 작품은 단지 위트 있는 위로 한마디("비겁한 건가, 숭고한 건가")나 타인의 이별에 대한 반응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를 통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철학적 해석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든 과정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보편성을 획득했을 때 얼마나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공감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가 다시 또 다른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관람객이 자신의 모든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소피 칼의 기념비적인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회는 '맛보기'라고 양보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는 곧 '전시의 완결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비단 이번 소피 칼 전시에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다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다.

한국 전시회에서는 작품 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 외부 건물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어서, 2009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시회 때 사진과 자료들을 오랜만에 살펴봤다. 덕분에 나도 간만에 그 시절을 쿨하게(!) 떠올려 본다.

Sophie Calle, exhibition <Sophie Calle: Qù et Quand?> in 313 Art Project, Seoul, 2013 ⓒ 문호경


* "전시에 대한 높은 관심에 호응"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전시회가 5월 10일까지로 연장되었단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시간 내서 한 번 보시길.


*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소피 칼과의 대화

2013. 4. 20.

어느 프리랜서의 토요일


10:00 기상
10:10 아침 식사(우유+시리얼+바나나)
10:30 출장지로 출발
12:10 도착. 진한 커피 마시면서 정신 차리기
12:20 카페 안 사람들의 대화 엿들으며 이야기 주제 분류
12:40 사진 촬영 / 관찰 / 수다를 가장한 인터뷰
14:00 업무 완료. 점심 식사(콩나물해장국)
14:25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빗속의 꽃구경
14:50 행인과 잡담
15:00 열차 탑승
15:55 열차 하차
16:10 귀가
16:20 청소 및 세탁. 우유 한 잔 마시고 잠깐 취침
19:00 저녁 식사(군만두 7개)
19:30 노트북 열기. '시동 복구' 가동 후 재시작
20:00 이메일 확인. 식곤증으로 밀려오는 잠과 사투
20:30 결국 다시 취침
21:30 아이스크림과 진한 홍차를 들고 책상 앞에 다시 착석
22:00 오늘 찍은 사진 정리 / 조사 및 검토 자료 작성
23:00 계속 자료 작성


* 오늘의 음악: Ryuichi Sakamoto <Rain (I Want A Divorce)>
http://www.youtube.com/watch?v=oKkoqZprUl4

* 오늘의 질문: 건물 앞 100미터 정도 길이의 도로 위에 건널목이 세 개씩이나, 그것도 신호등까지 갖춘 것들이 있는데도, 무단횡단으로 건물 현관에 진입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2013. 4. 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예술인 초청특강 자료집(대화에 대하여-아르놀피니 미술관 톰 트레버 관장)



1.
브리스톨에서 열리는 한 아트 페어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런던에서 출발, 페어 관람 후 들렀던 아르놀피니Arnolfini는 내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안겨준 공간이었다. 미술관 내부 세 개 층의 벽을 캔버스 삼아 추상적이고 즉흥적인 드로잉을 마음껏 선보인 오스트리아 작가 오토 지코Otto Zitko의 작품과, "특별한 누군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을 표시하는 일에 관한 것"이라고 명명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드로잉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미술관의 규모와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어떻게 관람객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하는가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했었다. 그리고 미술관 안 작은 카페에서 마신 얼 그레이 한 잔과 북 숍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책과 카드들은 그날 하루의 피곤함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Arnolfini ⓒ 문호경


 
 
Otto Zitko, Untitled, 2010, Acrylic, exhibition <Me, Myself and I> in Arnolfini ⓒ 문호경


아마도 난 그때부터 브리스톨이라는 도시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드라마 <스킨스Skins>의 거친 매력남 쿡Cook, 동서남북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낸 다양한 오픈 스튜디오와 예술가들, 볼링핀 넘어지는 소리와 클럽의 음악을 새벽까지 들으면서 가까스로 잠을 청해야 했던 게스트하우스... 문화예술이 어떻게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나에게 제대로 가르쳐 준 곳이 바로 브리스톨이다.

Bristol ⓒ 문호경

2.
작년 2월 주한영국문화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아트토크>에서 발제자로 참여했던 아르놀피니 관장 톰 트레버Tom Trevor가, 올 해 더욱 풍성해진 내용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대중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Tom Trevor ⓒ 문호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해외예술인 초청 특강
대화에 대하여(On Dialogue) 

- 일시 : 2013년 3월 12일(화) 15:00-16:30 
- 장소 :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 홀 
- 강사 : 톰 트레버(Tom Trevor, 아르놀피니 미술관 관장) 
- 주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한영국문화원


작년에는 뒤늦게 정보를 알게 되어 사후 자료들로만 강연 내용을 접했던 내가 이번에는 톰 트레버의 강연에 참석할 수 있었고, 그의 강연을 정리해서 자료집을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당일의 강연 내용만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아 맥락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써야 했다. 150여장의 파워포인트 자료로 보여준 사진들 중 강연 내용을 고려해서 주요 작품을 고르고, 작품들의 제목과 작가명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하는라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순차 통역으로 진행된 한국어 통역 녹취 후, 톰 트레버의 실제 강연 내용을 몇 번씩 듣고 대조해 가면서 빠지거나 틀렸거나 또는 지나치게 축약된 부분들을 풀어서 원고로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글 중간 중간에 주요 사진들을 배치하였고, 강연 당일 촬영한 사진들 중 몇 장을 골라 자료집 원고 앞뒤에 포함시켜 강연장의 생생함을 더하고자 했다.


3.
늘 자료에 묻혀서 살다보니 내가 만든 자료조차 나중에는 찾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자료집 역시 주최 측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작 필요할 때 여기저기 뒤지느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내 블로그에 링크해두려고 한다.


Nice to meet you, Tom. See you next year~


* 강연 자료집 다운로드(한국문화예술위원회): http://www.arko.or.kr/data/page2_6_list.jsp?board_idx=54&cw_category_id=&cw_category=&thisPage=1&searchType=&searchText=&board_crud=S&idx=28964&metaTitle=%ED%95%9C%EA%B5%AD%EB%AC%B8%ED%99%94%EC%98%88%EC%88%A0%EC%9C%84%EC%9B%90%ED%9A%8C+%ED%95%B4%EC%99%B8%EC%98%88%EC%88%A0%EC%9D%B8+%EC%B4%88%EC%B2%AD+%ED%8A%B9%EA%B0%95_%EB%8C%80%ED%99%94%EC%97%90+%EB%8C%80%ED%95%98%EC%97%AC%28On+Dialogue%29

2013. 4. 12.

My Favourite Music in Django Unchained


to remember today...



Django Unchained (2012)
Written and Directed by Quentin Tarantino
165 min / Adventure-Crime-Drama / 21 March 2013 (South Korea)


"Freedom" by Anthony Hamilton & Elayna Boynton
http://www.youtube.com/watch?v=dK35oeJzK7I&list=PLculhnrpeZEOBx1x2erpSyo6tonu2DeRU

"I Got A Name" by Jim Croce
http://www.youtube.com/watch?v=VvjI_wAJVLw
http://www.youtube.com/watch?v=zDAkravmoL0

Soundtrack Playlist (edited by tuksa99)
http://www.youtube.com/watch?v=eY-w6TUih9c

Official Site: http://www.unchainedsoundtrack.com

2013. 4. 11.

비엔날레, 연대를 꿈꾸다



Contemporary Art Journal / 2012 / Vol.11 / pp.34-44
* 편집자 주 - 글의 현장스케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텍스트의 시제는 그대로 살립니다.





비엔날레, 연대를 꿈꾸다

문호경 / 문화산업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가 열린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 문호경


바야흐로 비엔날레의 해였던 2012년이 저물고 있다.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서울은 물론 베니스, 리버풀, 카셀 등 국내외의 굵직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를 다녀온다는 명목으로 외유를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출장비에 상응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라 여념이 없는 이때, 필자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를 다녀왔다. 오라고 초대한 사람도, 가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없는 그곳을 혼자서 기꺼이 찾아가 보낸 3박 4일간의 일기를 공개한다.


2012. 10. 27. Day 1 비엔날레 큐레이터들, 한 자리에 모이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와 그리스 아테네에 본부를 둔 비엔날레 재단(Biennial Foundation)(1), 독일국제교류재단(ifa, 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 e. V.)이 공동주최한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는 '중심의 이동(Shifting Gravity)'이라는 주제로 앞으로 3일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미술의 확산과 비엔날레의 수적 증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유럽 중심의 모더니즘이 가졌던 목적론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비엔날레가 예술공동체에 영감을 주거나 결속을 다지며 지속적인 기반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기존의 예술관련 기관들이 유사한 모델로 변화하는 추세에서 비엔날레는 아직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실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관한 논의를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2)

대회 개요가 적힌 브로슈어를 보니 2002년 도큐멘타 11을 큐레이팅하고 2004년 베를린현대미술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와, 2005년 광저우트리엔날레와 2009년 리옹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회를 만든 후 한루(Hou Hanru)가 공동감독을 맡아 이번 대회를 진행한단다. 환영 리셉션, 기조발제 및 사례연구, 비엔날레 대표자 회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SeMA Day', 그리고 광주와 서울 및 부산 투어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관장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의 특별 인터뷰 시간이 마련되어 있고, 대회기간 동안 세계 비엔날레들의 출판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는 물론 최정화의 작품도 대회장인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볼거리 들을거리로 충만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의 환영 리셉션은 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열렸다. 퓨전 국악단체의 연주로 문을 연 리셉션에서는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과 강운태 광주시장 및 이번 대회 공동감독인 우테와 후의 환영인사가 이어졌고, 이후 식사와 네트워킹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있던 테이블에는 독일에서 온 저널리스트, 필리핀에서 온 독립 큐레이터, 그리고 서울의 한 문화예술기관 관계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엉키는 영어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면서,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눈에 익혔다. 비록 베니스비엔날레와 상파울로비엔날레 등 나름 친숙한 비엔날레의 대표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를 함께 준비했다는 우테와 후, 전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르네 블록(René Block) 등 비엔날레라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정상급 큐레이터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곳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어제 미리 도착해서 광주비엔날레 전시 관람도 마쳤고, 오늘은 무각사와 대인시장 그리고 비록 영화는 못 봤지만 광주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도 보고 왔으니, 이제 내일부터는 대회에만 집중하면 되겠다.

세계비엔날레대회 환영 리셉션 Ⓒ 문호경


2012. 10. 28. Day 2 비엔날레 박람회

오전 10시. 대회 개회 선언과, 민주주의 위기 상황 속에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 베이징 칭화대학교 교수인 왕 후이(Wang hui)의 '무엇이 평등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The Decline of Representation: Another Inquiry on the Equality of What)'이라는 기조 강연에 이어서 첫 번째 사례연구가 발표되었다. '아시아 퍼시픽 파트 a(Asia Pacific Part a)'라는 제목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술에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현대미술트리엔날레(호주), 다양한 전시 장소에서 일상성을 추구한 시드니비엔날레(호주), 적도(Equator)를 하나의 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는 족자비엔날레(인도네시아)가 소개되었다. 각 비엔날레 당 10분 정도의 발표 시간이 주어지다보니 사례연구라기보다는 해당 비엔날레의 웹페이지에 들어가 클릭하면서 구경하는 것 같았던 첫 번째 사례발표는, 국제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어떻게 지역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가 각각의 비엔날레가 안고 있는 고민임을 확인한 채 끝나버렸다.

점심 식사 후 이어진 두 번째 사례연구는 '아시아 퍼시픽 파트 b(Asia Pacific Part b)'로, 상하이비엔날레(중국), 타이페이비엔날레(대만), 요코하마트리엔날레(일본), 고베비엔날레(일본) 대표들의 발표였고, 사례연구 마지막은 '건축-디자인-인프라스트럭처(Architecture-Design-Infrastructure)'라는 주제로 모인 홍콩&심천건축/도시계획비엔날레(중국), 광주디자인비엔날레(한국), 광저우트리엔날레(중국)였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한국)를 발표하고 있는 배형민 Ⓒ 문호경

오늘 소개된 사례 중에는 소위 말하는 '창조 도시(creative city)' 마케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엔날레도 있었고, 2013년에 개최할 행사임을 홍보하면서 관광 자원으로서의 비엔날레를 어필하는 곳도 있었다. 각각의 비엔날레가 가지는 차별성 및 개최에 따른 어려움이나 한계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의 자리가 되기에 발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에 비해 소개되어야 하는 비엔날레는 너무 많았다. 한마디로 '비엔날레 박람회'에 온 느낌이었다. 고비용이 투입되지만 끝나고 나면 철거되고 마는 비엔날레의 지속가능성, 비엔날레 내 각 전시공간들의 상호 유기적 교류,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미술 프로젝트가 대중을 대하는 태도, 미술작품의 엔터테인먼트화가 가져온 부작용, 비엔날레의 상업화, 예술제도로서의 사회적 기능과 비판적 담론 생성 역할, 공적자금의 수혈과 그에 따른 정부 기관과의 관계 설정 등 비엔날레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이슈들이 대회장을 채웠지만 그냥 거기까지 였다. 전 세계의 비엔날레를 선별해주고 주제별로 묶어서 10분씩이라도 엿보게 해준 대회 관계자에게 고마운 마음이라도 전할까? 다리 아프게 박람회 전시 부스를 돌아다니는 대신 편안히 의자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친절하게 틀어주고 넘겨주는 화면과 음성 설명에 그저 감사해야 할까?

오늘의 모든 사례발표가 끝난 후 이어진(어제까지만 해도 대회 일정표에 나와 있지 않았던) 한스의 인터뷰 대상은, 알고 보니 바로 올해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 수상자인 문경원과 전준호였다. 현재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자신들의 작품이 전체 프로젝트의 일부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데 긴 시간이 할애되었다. 짧은 전체 토론이 끝난 후, 건너편 호텔에서 제공해 준 저녁을 먹고 참가자들과 함께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도착했다. 2시간여 동안의 자유 관람이라고 해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문경원, 전준호와 인터뷰 중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 문호경

그런데 난 아직도 이번 대회의 주제인 '중심의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서구에만 존재하던 비엔날레가 이제 도시화 및 민주화를 통해 변화를 겪은(또는 겪고 있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으니 기존에 서구(특히 유럽) 미술계가 중심으로서 가졌던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인지, 노후하고 쇠락한 비엔날레가 아닌 신생 및 후발 주자들이 현재 비엔날레 판세의 중심이라는 것인지, 비위계적, 대안적, 비판적 성격의 비엔날레가 이제 미술 시장 및 도시 재생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여타 미술 이벤트를 멀찌감치 떼어 놓으면서 미술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인지, 과연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정말 중심이 '이동'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세계 비엔날레들의 출판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 Ⓒ 문호경


2012. 10. 29. Day 3 무엇을 위해 그들은 모였는가?

오늘 대회도 어제의 '주마간산'식 비엔날레 사례 발표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한층 다채로운 형식과 내용의 비엔날레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었다. 물론 시간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10분씩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미적 세계주의'라는 주제로 "일종의 세상을 만드는 행위이며 세계주의 상상의 일부"(3)로서 예술적 감수성과 주관성을 역설한 호주 멜버른 대학교 교수인 니코스 파파스테르기아디스(Nikos Papastergiadis)의 기조발제에 이어서, '이머전트-얼터너티브(Emergent-Alternative)'라는 제목으로 묶인 네 번째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머전시비엔날레(체첸공화국), 트빌리시트리엔날레(조지아), 초바이멜라비엔날레(방글라데시), 몽골리아대지아트비엔날레(몽골리아), 코치-무지리스비엔날레(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사례들은 확실히 미술계가 세분화되어가고 있고, 전 세계 모든 지역이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는 잠재적 플랫폼이자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체첸 전쟁 중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작은 작품들을 여행 가방에 담아 전시 상황인 그로니즈와 파리에서 동시에 개최했던 이머전시비엔날레, 예술가들이 유목민적 전통에 따른 캠프 생활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기록물의 형태로 전시하는 몽골리아의 대지아트비엔날레,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과 정부의 검열을 오히려 더 많은 대중과 만나는 기회로 삼아 예술작품들을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보여준 방글라데시의 초바이멜라비엔날레 등은, 비엔날레가 견지했던 사회비판적 기능이 여전히 유효하며 비엔날레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다섯 번째 사례연구에서는 한국의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소개되었고, 여섯 번째 사례에서는 '아시아와 주변부(Asia and its Margins)'라는 제목 하에 이스탄불비엔날레(터키), 미팅포인트(아랍권), 우랄인더스트리얼현대미술비엔날레(러시아), 사르자비엔날레(아랍에미레이트) 등 러시아와 아랍 및 이슬람 문화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엔날레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르자비엔날레(아랍에미레이트)를 발표하고 있는 후르 알 카시미 Ⓒ 문호경

사실 이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가장 큰 목적은, '비엔날레 대표자 회의' 개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7년의 역사를 지닌 비엔날레 제도의 역사상 처음으로 비엔날레 기관의 공통적 목표를 논의하고 비엔날레가 사회 내에서 행하는 역할을 토의"(4)하기 위해 마련된 이 회의는 모든 사례연구 발표가 끝난 후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총 45개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대표가 참석한 회의 참가자 목록에는 우리나라의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청주공예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경기도자비엔날레, 인천국제여성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프로젝트대전이 올라와 있었는데, 오늘 저녁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세계비엔날레협회(IBA, International Biennial Association)' 창설이 합의되었다고 한다.(5) "더 강력한 전문적인 협력과 집단, 협동을 통한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과 이익을 함께 논의하고자"(6) 대륙별 대표자를 선정하고 협회 창설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구체적인 활동을 진행하겠다는 비엔날레 대표자회의의 개최 소식은, 이번 대회 참가를 신청한 날부터 나에게 녹녹치 않은 질문들을 던졌다.

비엔날레를 만드는 '노마딕(nomadic)' 큐레이터들(총감독 포함)에 관한 논의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국제적 큐레이터들이 자본주의적 세계화라는 우산 아래 비엔날레를 통해 글로벌 아트 시스템을 만들면서 예술의 다양성 대신 획일화를 초래하고 있고, 해당 국가와 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이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상실한 채 비엔날레를 상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7) 반면,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주제와 의미를 매번 만들어내야 하는 '글로브트로팅(globe-trotting)' 큐레이터들이야말로 비실체적인 노동(immaterial labour)을 통해 문화산업 현장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8)

그렇다면 무엇이 비엔날레 대표자들로 하여금 연대를 모색하게 하는가? 앞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될 세계비엔날레협회가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미 보이지 않는 강력한 네트워킹으로 묶여져 있는 그들에게 '느슨해 보이는' 네트워크 대신 '공식적이고' '중심이 되는' 협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각국을 뛰어다녀야 하는 힘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일종의 노동조합인가? 재정 부족에 허덕이는 군소 비엔날레를 위해 공동의 기금을 마련해서 구호에 나설 것인가? 반복되는 전시 주제와 제한된 작가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스터디 모임이 될 것인가? 참신한 아이디어에 목마른 '우두머리' 큐레이터들이 젊은 기획자와 예술가들을 모집하는 글로벌 취업박람회의 역할을 할 것인가? 또한 그들이 이루어 낸 국제적 연대의 협상 파트너는 누가 될 것인가? 작품 검열과 까다로운 비자 발급으로 본인들의 당초 전시 기획 내용과 일정을 망쳐버리는 답답하고 몰상식한 정부? 그들의 창조적 사유와 예술성을 이해하기는커녕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경직된 관료 조직? 아님 아직도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의 신천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잠재적 세계 시장의 예술가와 대중?(9)


2012. 10. 30. Day 4 다원적 우주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서울로 출발하기 전, 오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을 방문 했다.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가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해에는 예술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해야 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광주는 확실히 정체성을 찾은 듯싶다. "아시아 문화교류와 창작, 교육 및 연구가 이루어지는 문화중심도시의 핵심시설로서 아시아문화의 역동적 에너지를 만들고 발산하는 문화발전소"(10)라는 소박한 설명과 대조되는 7,000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나니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잠시 방문하고 난 후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공식 일정의 마지막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세 번째 기조발제와 미디어비엔날레 관람 및 만찬이었는데, 발표자는 정치철학자 샹탈 무프(Chantal Mouffe)였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샹탈은, 각종 예술 축제와 비엔날레가 표방하는 '세계주의'를 넘어(Beyond Cosmopolitanism) 문화예술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샹탈은 세계주의가 보편성(universality)을 바탕으로 '인류는 하나'라는 개념을 표방하고 공동체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예술 영역의 다양성을 희석시킬 수 있음을 지적했고, 이러한 세계주의의 대안으로 '불가지론적 조우(an agonistic encounter)'(11)를 제시했다. 샹탈은 정치와 예술이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참여(engagement) 또는 철회(withdrawal)라는 방식으로 모든 예술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다양한 예술의 비판적 실천이야말로 지배적 합의를 흔들고 모호하게 만들 수 있으며 세계화가 추구하는 문화적 균질화에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세계주의에 내재된 보편성은 문화예술이 추구해서는 안 될 가치이며, 서구의 패권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탈(divergence)과 대결(hostipitality)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성과 진보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더니티, 탈중앙화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참여하는 다이내믹한 모더니티, 지역성을 추구하면서 '해석(translation)' 또는 '해독(transcoding)'을 통해 서로 공명하고 공동의 이해로 나아가는 관계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위협 속에서 진정한 탈식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샹탈은 피력했다. 따라서 이탈과 대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논쟁 속에서 전 세계 각기 다른 지역의 다양한 예술활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부조화, 국제문화교류의 구조를 결정짓는 권력관계를 인정하는 불가지론적 조우야말로 비엔날레를,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다원적 우주(pluriverse)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2)

10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조발제 중인 샹탈 무프 Ⓒ 문호경

샹탈의 발표를 듣고 난 후, 나는 미디어시티서울 관람과 저녁 만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정동길을 걸어 내려왔다.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 이래로 현재 150여개의 비엔날레는 다층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정치가, 큐레이터, 스폰서 등 여러 주체들의 이질적인 이해관계가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있듯이, 대회기간동안 나는 비엔날레에 부여된 여러 가지 책임만큼이나 다양한 욕망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광주에 왔으며,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나갈 비엔날레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미완의 과제인 글로칼리티(glocality)와 탈식민주의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까? 그리고 이 3박 4일 동안 스치고 간 인연들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대회 내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 이번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공식 영문 표기는 'The World Biennial Forum No 1'이다. 그렇다면 다음 번 대회는 'No 2', 그다음은 'No 3'인지?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 2012 World Biennial Forum


* 주

(1) 본 대회 공동개최를 위해 광주시와 MOU를 체결한 비엔날레 재단의 불분명한 실체와 미약한 대표성에 대해 올 해 초 한 지방일간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실체 불명 단체와 세계비엔날레 개최라니」, 광주일보, 2012년 2월 14일자.

(2)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브로슈어.

(3)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16.

(4)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86.

(5) 「세계비엔날레협회 창설키로」,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2012년 10월 30일.

(6)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86.

(7) Julian Stallabrass, "New World Order", Contemporary Art: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19-49. 줄리안은 마치 기업가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비엔날레를 옮겨 다니는 큐레이터들 역시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큐레이터들은 세계화된 예술이라는 국제적 기준을 교환하고 글로벌 하이브리디티를 추구하기 때문에, 정작 지역성과 지역민을 고려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라는 동일한 주제의 비엔날레를 계속해서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8) Pascal Gielen, "The Biennale: A Post-Institution for Immaterial Labour", The Murmuring of the Artistic Multitude: Global Art, Memory and Post-Fordism, Amsterdam: Valiz, 2009, pp.35-46. 파스칼은 새로운 지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해 의미 있는 반응을 늘 반복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비엔날레 큐레이터들이, 지역적으로 매번 다른 노동 조건과 불안정한 상황(특히 임시직으로서의 계약)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9) 이번 대회에서 특별 강연을 한 르네 블록은, 이미 2000년에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 열린 첫 번째 비엔날레 컨퍼런스에서 비엔날레 큐레이팅의 윤리와 기준, 책임성을 촉구하면서 국제 비엔날레 위원회(international biennale board)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1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브로슈어 p.9.

(11) 샹탈의 기조 발제 한국어 요약문에 'an agonistic encounter'가 '불가지론적 조우'로 번역되어 있다.

(12) 샹탈 무프, 「세계주의를 넘어」,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기조 발제, 2012년 10월 30일.

"유폐된 영토, 비엔날레"



2013년에도 어김없이 세계 곳곳에서 '비엔날레biennale'가 열리고 있다.

작년 가을에 시작해서 해를 넘기고 마무리된 대만 타이페이 비엔날레Taipei Biennial, 중국 상하이 비엔날레Shanghai Biennale 등을 제외하고라도, 이번 주말에 끝나는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6월의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7월 포르투갈 세르베이라 비엔날레Biennial of Cerveira, 8월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Aichi Triennale, 9월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Lyon Biennial와 터키 이스탄불 비엔날레Istanbul Biennial, 10월 캐나다 몬트리얼 비엔날레Biennale de Montréal와 싱가포르 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 등 다양한 종류와 규모의 비엔날레가 미술계 사람들의 스케줄 표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6월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제55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에서는 '보따리'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커미셔너 김승덕)의 작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9월 6일~11월 3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9월 11일~10월 20일),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9월 28일~11월 17일) 등이 개최 준비에 한창이다.

2012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는 물론 서울 및 여러 광역시에서 개최되었던 국내 비엔날레들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주제 및 기획의 적합성, 전시 및 프로그램의 구성과 완성도, 큐레이터(커미셔너)의 능력과 자질, 지역민의 참여 및 호응, 해당 지자체의 문화예술 행정체계와 이해도 등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비판적인(때로는 비관적인) 논평이 쏟아졌고, 비엔날레가 취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태도에 대한 회의론(심지어 무용론까지)이 등장하기도 했다.

계간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11호(Contemporary Art Journal / 2012 / Vol.11)는 "유폐된 영토, 비엔날레"라는 제목으로, 작년 한 해 국내 및 해외(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관한 특집 기획을 마련했었다. 게재된 글 중에는 우리나라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비엔날레대회에 관한 나의 졸고 '비엔날레, 연대를 꿈꾸다'도 있다.

이제 우리에게 비엔날레는 2년마다가 아닌 '매년' 경험하고 치러내야 하는 '행사'이다.


PS: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더 이상 CAJ 11호를 살 수 없기에 글 목차와 내가 쓴 원고를 블로그에 올린다. 혹시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CAJ 웹사이트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해야 할 듯...








2013. 4. 7.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북 트레일러


http://www.youtube.com/watch?v=KYuSaV2T1xo

사진 : 문호경
영상 : 신영삼
음악 : Kevin MacLeod
편집 : 김재영, 문호경
제작 : 문호경
제작일 : 2012. 7. 8
ⓒ 2012 Ho Kyung Moon


육아 휴가(?) 중이던 김재영 감독 집에서 함께 만든 '북 트레일러'이다.

3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에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영상 편집이 얼마나 수고스럽고 창의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오픈 스튜디오 기간 동안 촬영에 임해 준 아트 북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Ruth Martin,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런던에서 직접 동영상 촬영을 해 주고 자료 올리느라 며칠 동안 고생 많았던 신영삼 군, 다양한 음악 샘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Kevin MacLeod (http://incompetech.com), 그리고 까다로운 제작자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해주고 편집기술 과외까지 해 준 김재영 감독. 모두 고맙습니다!

Many thanks for your help!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in English)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영문 개요 / 목차 / 추천사

Dear Matthew, Roland, Yoonjoe, and my artists.
Thanks ever so much for your help and support, I do really appreciate it!



The Real UK Opens Itself On Weekends
: From A Canvas To A Bedroom, Open Studios In The UK





The writer’s note

“Who are the neighbours in my area?”
“Who is living in the house that I always pass by?”

Out of curiosity and interest I made up my mind to go on a journey to meet artists in their open studios in the UK. This book focuses on ‘open studios’ which I experienced in the UK over a period of about two years. It is a record of my communication with artists whom I met in London, Brighton, Cambridge, Bristol and Kendal in England, and Ards in Northern Ireland. Visiting open studios was a golden opportunity to discover various artists and to see their works in their studios at first hand and to engage with them in discussion. This includes young artists who have just started their career, late-beginners pursuing their dream to become artists, mature artists who have continued to work hard without just feeding off their previous success and reputation, female artists who juggle work with their life as housewives, amateurs who trace their passion in art and special artists who reaffirm their will to live through art.

Encountering artists in their open studios is a process of endless questioning and getting answers to why they have a certain attitude towards art and ways of achieving sustainable cultural practices. Therefore, this book conveys the process of growth in people in the arts field who have their own belief and enthusiasm for their art, rather than the myths or success stories of celebrated artists. I hope my book makes a contribution to enlarging the perspective of the concept of creativity and the value of the arts, artists and their studios. I also hope my work brings a fresh approach to the visual art scene, particularly in South Korea, and leads to revealing the creative qualities of cities and regions.

It is tea time, so time to have a chat with the artist who is making his own world in his studio!


Commentary

“This is a charming and clear-sighted survey of the practice of open studios in the United Kingdom. Ho Kyung Moon is a highly attentive observer of this emerging custom and draws a picture of it unlike any other writer. This book brings together a discussion of the amateur and the ‘love of art’ to propose a culture in which social and urban development happen, in part, through collective action based on enthusiasm. This book is at once a portrait of artists, of neighbourhoods, and a perceptive argument for creativity.”
- Dr. Matthew Fuller, Reader, Centre for Cultural Studies, 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Art, in particular contemporary art, is often viewed as complicated or inaccessible. The perception of artists is not very different; they can be seen as mysterious, unapproachable and remote. The Real UK Opens Itself On Weekends, with the help of beautiful photography, shows artists and their studios in a friendlier way, as neighbours who we can get to know. This book is a lovely invitation to engage with art and artists for those who may not know much about art but are full of curiosity. It is also an invitation and encouragement to Korean artists to open their studios and share their creativity and their passion.”
- Roland Davies, Director, British Council Korea & Yoonjoe Park, Arts Manager, British Council Korea


Contents

Open

1. Shall We Covet Our Neighbor’s House : Brockley Open Studios / London
85 Wickham Road
A witch’s castle
A second meeting
Ten out of ten
Beyond Hilly Fields


2. Lessons From The Arts : Brighton and Hove Artists Open Houses / Brighton, Hove
‘Fiveways’ artists
Lessons from the arts
The talented chocolatier
The cool hair shop
Synaesthetic Philippa


3. A Laboratory Of Creative Industry : Cockpit Arts Open Studios / London
Memories from the cards
Budding Katharine
Like a boomerang
‘Old’ art
Made in Deptford


4. History Was Not Built In A Day : Cambridge Open Studios / Cambridge
The piano man
Making friends
Let butterflies fly home
Ways of recalling my locality
Passion has made history


5. Art As A Resource For Tourism : The Creative Peninsula Open Studios / Ards
An alchemist with glass
Playing by myself
Drawing with language
Arachne in Portaferry
The power of craft


6. The Show Must Go On : Green Door Art Trail / Kendal
Bourdelle vs Xun-ziAt this moment
The beautiful garden
Animals on the wall
Our open studio must go on

7. Art Has Nurtured Communities : Front Room Art Trail, North Bristol Art Trail / Bristol
Spending the whole day in a pub
His studio could be anywhere
Ironic drawings
Art fosters hope
The spirit of adventure

8. Come To Our Village : Hidden Art Open Studios, Sydenham Artists’ Trail / London
Healing chairs
Montmartre in London
We recycle everything
Neighbours who make art
Walking down Havelock Walk

Closed

Appendix

 

2013. 4. 2.

4월에 듣고 싶은 음악


'4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당연히 Deep Purple의 <April> 이다. 딥 퍼플의 가장 긴 곡으로 알려져 있는 <April>은 12분이 넘는 관계로 평소에는 팝 전문 라디오 방송에서조차 잘 틀어주지 않지만, 4월이 시작되는 날이면 꼭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올 해는 영화배우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어서인지, 유독 그에 관한 기사와 음악이 눈에 많이 띈다. 때맞춰 출간된 책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주성철 지음, 흐름출판)을 조만간에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오랜만에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어 보았다. 다름 아닌 <총애 장국영>.


ⓒ 1995 Rock Records & Tapes Co., Ltd

1995(1996?)년에 개봉한 영화 <야반가성>을 극장에서 보고 난 후 구입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1980년대 중반부터 그가 출연한 영화라면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보던 나로서는 "영화의 제왕 장국영이 가장 사랑하는 6편의 영화, 당신이 가장 총애할 가치가 있는 노래의 왕 장국영의 영화주제가 10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앨범의 '득템'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OST를 구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그 옆에다 녹음기를 두고 직접 녹음을 해서 나만의 '영화 음악'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영웅 본색> 시리즈 OST는 모두 다 그렇게 만들어서 들었다.

<야반가성>에서는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야 장국영이 등장하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뒷모습으로 서있던 그가 돌아서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여주던 순간이다. "꺄" "와" "하아" 등 각종 감탄과 환호성이 고요하던 극장 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뒤이어 쏟아진 웃음소리까지 듣고 난 후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관객들은 '공인'된 장국영의 팬으로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종의 침묵 속 연대감이랄까? 나는 이 앨범에 포함된 10곡 중 영화 <풍월>의 주제곡인 <A Thousand Dreams of You> 가사를 외워 따라 부르며 내 호출기에 녹음해 두기까지 했었다.

재생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정겹고 아리다.

사람들 속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네
피곤한 내 마음 잃어버린 내 사랑
인생은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
낮에 가볍게 만났다가
밤에 가벼운 포옹을 하네
나의 마음은 외롭고 적막해
나의 사랑은 길을 잃은 듯
기댈 곳 없이 헤매네.
어두운 밤 난 일종의 감동을 찾아 헤매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내 사랑이야 어찌되는 아무도 상관 않지
나의 꿈이야 어찌되는 기댈 곳조차 없네
어두운 밤 난 일종의 감동을 찾아 헤매네.
언제 만나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인생

- 영화 <아비정전> 주제곡, '아비정전,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걸까?'

Wish you peace and happiness in heaven, Leslie Ch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