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3.

K대 M&J학과 대학원생들에게 (2)


'번역 연습' 두 번째 영어 원문에 대한 저의 해석입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제... 메리 크리스마스~


1983년 12월 20일, 오토 퀸즐리는 뮌헨 로트링거슈트라세에서 주목할 만한 퍼포먼스를 조직했다. 가게 창문 같은 역할을 하는 커다란 창 뒤 작은 방안에, 흥겹게 검은 색 옷을 차려입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독일 1마르크 동전 200개로 만든 무거운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남성 역시 격식 있게 검은 색 의상을 입고 그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공식 스탬프가 찍혀 있는 골드 바 형태로 된 커다란 금 브로치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 브로치는 스위스 초콜릿의 포장지로 만든 것이었다. 장신구들에는 <더 스위스 골드 앤드 더 도이치마르크>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 남성과 여성은 편안한 모임을 즐겼고, 담배를 피우고, 약간의 담소를 나누며, 음악을 듣고 샴페인을 마시면서, 창문 너머 그들 자신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인접해있는 빈 방에서, 방문객들은 모여 캔 맥주를 마셨다. 그들은 (장신구를 착용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남성과 여성은 방문객들을 쳐다보고 아마도 그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을 것이다. - 그 방들 간의 음향상의 접촉은 없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관람객과 연기자들을 커다란 숍 윈도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오토 퀸즐리가 작성한 기록물에서, 그는 자신이 방안에 들어갔을 때 그 남성과 여성이 있던 창문 가까이에서 방문객들이 지나가야 했고, 그것은 확실히 무서운 경험이라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제 거리를 두려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추고 멀리 떨어져서 그 남성과 여성을 은밀하게 힐끗 보고 있다. 네 개의 창이 그 큰 방에서 거리 쪽을 향해 나 있었다. 해질녘 어스름 아래에서, 보행자들은 방문객들을 보기 위해 멈춰 섰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보고 보이는 사람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위한 하나의 장면을 창조한 것으로, 이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내내 장신구는 단지 소소한 역할만을 수행했다. 물론 이 <더 스위스 골드 앤드 더 도이치마르크> 장신구들은 퇴폐, 게으름, 풍요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실제로 그 장면의 단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신구들은 전시에 출품된 실제 작품으로서 보다는 오히려 소도구로서 거기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품 자체는 장신구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예술가의 말대로 '과시욕, 관음증, 가짜와 진짜, 리셉션, 소비주의적인 행태, 도덕적 개념의 변덕스러움, 착취, 허영과 환영'에 대한 것이었다.

이 설치의 마지막 단계로, 퀸즐리는 그 커플의 사진을 마치 공식적인 초상화처럼 찍었고, 그는 이후의 전시들에서 그 장신구들을 보여주고 판매했다. 초콜릿 포장지로 만든 <더 스위스 골드>는 약 10점 정도의 에디션으로 제작되었고, 200개의 진짜 독일 1마르크짜리 동전으로 만들어진 1.2 킬로그램의 <더 도이치마르크> 목걸이는 일품으로 제작되었다. 장신구는, 실제 예술작품이자 더 나아가 오직 일련의 사진, 글로 쓴 설명, 예술가가 만든 공식적인 초상화로만 기록되는 퍼포먼스의 유물로 보일 수 있다. 퀸즐리에 따르면, 그 초상사진은 오로지 두 번 또는 세 번 정도만 전시되었고, 실제로 그 사진이 속할 수 있었던 미술관이 결코 구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Otto Künzli, The Swiss Gold and The Deutschmark, 1983, Collection of the artist ⓒ Otto Künzli


* prop [countable]
1. an object placed under or against something to hold it in a particular position
2. [usually plural] a small object such as a book, weapon etc, used by actors in a play or film
3. something or someone that helps you to feel strong

* exhibitionism [uncountable]
1. behaviour that is intended to make people notice or admire you - used to show disapproval
2. a medical condition that makes someone want to show their sexual organs in public places

K대 M&J학과 대학원생들에게 (1)


모두들 잘 지내고 있죠?
ONE-OFF 팀은 좋은 경험 많이 했구요? (주신 표로 지난주에 잘 보고 왔습니다. 못 만나서 아쉬웠어요.)
수업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요?

그동안 저와 함께 빡빡한 수업하느라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마지막 날 수업에는 전화기를 꺼두어서, 저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지(5시간은 제가 생각해도 쫌...) 몰랐답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적어 주신 강의 평가 내용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강의 전반은 물론 상세한 부분까지 적어 준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영어 연습 결과물들을 보면서는, 그동안 여러분이 번역 발표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반항(?)없이 따라 와 줘서 고맙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 덕분에 짧고 빡센 공부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밤새 준비한 내용들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길은 늘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사(史)' 수업이 아닌 관계로, 이러 저러한 현장 및 이슈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얇고 넓은 내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 전문은 원래 하나의 사안에 대해 요리 조리 깊게 파고드는 것인데 말이죠. 아무쪼록 우리들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다양하고 복합적인 내용들이 머지않아 여러분에게, 그리고 저에게도 유용한 실마리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참, 제가 마지막 시간에 발표한 주제와 관련해서 혹시 관심 있는 분은, 우리가 함께 읽었던 The Craft Reader 의 섹션 7 (특히 75번)을 읽어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여러분이 제출한 소논문을 읽어 보니, '각주'를 사용한 사람이 몇 명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논문 작성 시, 각주를 통해 직접 또는 간접 인용한 문구들에 대한 출처를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애써 준비한 내용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프**** 처럼 너덜너덜해지게 공격만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절대 함부로 써버리지 말라는 것과 여러분 자신을 믿으라는 이야기를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여러분과 또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문 호 경




2013. 12. 3.

1만 시간의 법칙


지난 토요일에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13회의 제목인 '1만 시간의 법칙'은, 나정(고아라 분)에 대한 칠봉이(유연석 분)의 끈기 있는 구애 그리고/또는 그의 야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상징하고 있다.

ⓒ <응답하라 1994> 13회/tvN

최근 진행한 강의에서 이 '1만 시간'과 관련한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계산을 해보니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417일, 하루에 8시간 사용 시 1,250일(3.42년)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즉 최소 3년은 투자를 해 봐야 그 일의 향방을 알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모든 결과에는 3년이라는 절대 투입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업 시 참고했던 부분을 적어본다. (그런데 과연 칠봉이는 언제까지 짝사랑을 계속 할 수 있을까?)


"All craftsmanship is founded on skill developed to a high degree. By one commonly used measure, about ten thousand hours of experience are required to produce a master carpenter or musician. Various studies show that as skill progresses, it becomes more problem-attuned, like the lab technician worrying about procedure, whereas people with primitive levels of skill struggle more exclusively on getting things to work. At its higher reaches, technique is no longer a mechanical activity; people can feel fully and think deeply what they are doing once they do it well. It is at the level of mastery, I will show, that ethical problems of craft appear...

어떤 분야든 장인의식은 고도로 숙달된 기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통적으로 쓰이는 척도가 하나 있는데, 마스터 목공이나 마스터 연주자의 기량에 도달하려면 1만 시간가량의 실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기량이 늘어감에 따라 실험 절차를 고민하는 실험실 조교처럼 문제를 보는 눈이 다채로워진다. 반면 초보 수준의 기능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주로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해한다. 기능이 높은 단계에 도달해 일단 일이 원숙해지면, 자신이 하는 일을 느낌으로 알게 되고 일에 대한 생각도 깊어진다. 이렇게 높은 단계에서의 기술은 더 이상 기계적인 활동이 아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바로 이 숙달된 경지에서 장인이 하는 일에 윤리적인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As mentioned at the outset of this book, ten thousand hours is a common touchstone for how long it takes to become an expert. In studies of "composers, basketball players*, fiction writers, ice skaters,... and master criminals," the psychologist Daniel Levitin remarks, "this number comes up again and again."** This seemingly huge time span represents how long researchers estimate it takes for complex skills to become so deeply ingrained that these become readily available, tacit knowledge. Putting the master criminal aside, this number is not really an enormity. The ten-thousand-hour rule translates into practicing three hours a day for ten years, which is indeed a common training span for young people in sports. The seven years of apprentice work in a medieval goldsmithy represents just under five hours of bench work each day, which accords with what is known of the workshops. The grueling conditions of a doctor's internship and residency can compress the ten thousand hours into three years or less.

... 1만 시간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통상적인 기준이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레비틴(Daniel Levitin)은 "작곡가, 농구선수*, 소설가, 빙상 스케이트 선수, 범죄의 대가를 연구해보면 이 1만 시간이란 숫자가 계속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1만 시간이라고 하면 얼른 생각하기에도 아주 길어 보인다. 이 숫자는 복잡한 기능을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몸에 배게 하는(즉 암묵적 지식으로 체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자들이 추정한 결과다. 범죄의 대가를 빼고 말하면, 이 숫자가 정말로 엄청난 시간은 아니다. 매일 연습해서 10년 동안 1만 시간을 채운다고 하면, 하루 세 시간 꼴로 연습하는 게 된다. 10년은 젊은 운동선수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훈련 경력이다. 중세 때 금세공 일을 배우는 도제에 적용해보면, 견습 기간이 7년이었으니 매일 다섯 시간 좀 못 되게 의자에 붙어 앉아 일을 배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루 다섯 시간이면 흔히 알려진 작업장 전통과 잘 들어맞는다. 의과대학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의들의 진을 빼는 근무 조건에 적용해보자면, 3년 이내에 1만 시간을 채울 수 있다."


* 한국어판에 '야구선수'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수정하였다.

** Daniel Levitin, This Is Your Brain on Music (New York: Dutton, 2006), 193.



quoted from Richard Sennett, The Craftsman (London: Penguin Books, 2009), 20; 172. /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장인』, 21세기북스, pp.45-46; p.278.

2013. 12. 1.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e-Book 출간


『real 영국은 주말에 오픈한다: 캔버스에서 침실까지, 영국의 오픈 스튜디오를 가다』가 전자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작년 7월 종이책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여러 장소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정말 신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초보 작가의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써 주신 출판사 이봄 식구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블로그에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주한영국문화원, 제 책에 관심을 가져주신 언론 및 도서관 관계자 분들, 독자 및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영국의 오픈 스튜디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저의 책을 읽고 감상평을 써 주신 분들께는 더욱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길든 짧든, 호평이든 악평이든 서평을 쓴다는 게 여간한 애정 없이는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저 역시 잘 알고 있거든요.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 블로그, SNS, 출판 관련 저널 등 다양한 매체에 남겨 주신 한 분 한 분의 귀한 글들이 제게는 날카롭고 따뜻한 격려가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이렇게나마 감사 인사드립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행복하시고, 저는 소중한 인연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며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구입 후 바로 읽기가 가능한, 종이책보다 가격도 저렴한 e-Book으로, 영국의 오픈 스튜디오를 즐겨 보세요~

교보문고
YES 24
인터파크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2013. 10. 15.

시간


훌쩍 20일이 흘렀다.

3주 전, 엄마의 수술 때문에 며칠만 집에 다녀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엄마를 돌봐드릴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족 중 나밖에 없기 때문에 당분간의 '봉사'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간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수술은 우리 가족 모두의 허를 찔렀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에서 이뤄지는 수술 건수 중 5위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수술이라는 백내장 수술은, 시술만 2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 수술 후 주의해야 할 사항이 A4 용지 한 장에 빼곡히 적혀있을 정도로 환자가 신경 써야 할 내용이 정말로 많은 수술이었다. 수술 후 절대안정은 물론이거니와 2주일간 세수 등 '물과의 접촉' 금지, 고개를 숙인다거나 몸에 힘을 주는 일도 금지, 2시간 간격으로 두 종류의 안약 투입, 매일~이틀에 한 번꼴인 통원 치료 등 백내장 수술은 시간만 짧았지 결코 간단한 사후관리를 요하는 수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수술 당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수술 후 며칠간 엄마 식사나 챙겨드리고 말벗이나 해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나는, 지난 3주 동안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몸소 겪어내야 했다.

그 중 가장 힘든 것은 하루 세 끼 밥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평소 두 끼, 그것도 한 끼는 콘플레이크와 우유로 때우고, 나머지 한 끼는 간단하게 해 먹거나 아예 밖에 나가 사먹는 나로서는, 세 번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식후 복용해야 할 약 때문에 한 끼라도 거를 수 없는 엄마를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간단한 메뉴라고 하더라도 매 번 상을 차리는 일은 웬만한 인내심과 노력 없이는 하기 힘든, 반복되는 단순노동인 동시에 창의성마저 필요한 작업이었다. 결코 짬이 안 나는, 읽으려고 가져갔던 책들을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일이, 바로 먹고 치우는 일임을 새삼 격하게 깨달았다.

간호는 또 어떠한가. 2시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야 하는데 아직 시력이 회복되지 못한 엄마를 대신해서 약을 넣어드려야 하고, 먹는 약을 챙겨 드리고, 주무시는 동안 혹여 수술한 쪽 눈 부위가 베게에 닿지는 않는지 '감시'까지 해야 하니, 길어야 1시간 50분 정도의 쪽잠밖에 잘 수 없었다. 잠이 부족하니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그런데 회복은 더디니 과연 내가 제대로 엄마를 돌봐드리고 있는 것인지 회의감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의뢰받은 일까지 처리해야 하니,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고민 끝에 포기하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했었다. 처음에는 손해 보는 것이 너무 많아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인가 싶었는데, 프로젝트를 안 했을 때 할 수 있는 일 및 좋은 점들을 하나하나 적어내려가다보니 그다지 나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강의 준비에도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3주라는 시간이 지났고 몸과 마음은 지쳤지만, 아마도 나에게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나는 그 시간을 거의 다 써버렸다. 나만을 위한 시간과 다른 누군가를 위한 시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가를 따지는 것보다, 다음에도 가질 수 있는 시간인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나는 내 시간을 엄마에게 드렸다. 그리고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에 돌아왔다.

2013. 9. 16.

오메 어찌까


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기념 특별기획전 <만물상 - 사물에서 존재로>
광주시립미술관 / 2013.9.3 - 11.10

......

"좋은 인연을 못쓰게도 맨들고
안좋은 인연을 좋게도 맨들고
그거이 사람 허기 달렸어"

이진경, 오메 어찌까, 시트지 / 가변설치 / 2013



 이진경, 오메 어찌까, 2013 ⓒ 문호경


2013. 8. 16.

홍콩, 잔치는 시작됐다: 아트 바젤 홍콩 (Art Basel Hong Kong)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Contemporary Art Journal / 2013 / Vol.14 / pp.90-93.
* 편집 시 누락된 표, 주석, 사진을 추가하고, 오자를 바로 잡아 게재한다.



홍콩, 잔치는 시작됐다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 / 2013. 5. 23 ~ 5. 26 /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

문호경 / 문화컨설턴트


아트 바젤 홍콩 ⓒ 문호경


지난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에서 열린 '아트 바젤 홍콩'은 기존에 홍콩에서 열리고 있던 아트 페어인 '아트 홍콩Art HK'을 인수한 아트 바젤 측이 올 해 처음으로 개최한 '홍콩판 아트 바젤'로,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에서 모여든 6만여 명의 미술 전문가와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총 35개국 245개 갤러리의 '대표 선수'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앤디 워홀Andy Warhol,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장 샤오강Zhang Xiaogang,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등의 '빅 네임'부터 신진 작가에 이르기까지 3천여 명의 미술가들이 포진해 있었고, 20세기와 21세기 현대 미술을 총망라하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의 작품들이 '갤러리Galleries', 대규모 조각 및 설치 작품 중심의 '인카운터Encounters', 아시아 및 아시아 퍼시픽 지역 갤러리들의 '인사이트Insights', 떠오르는 현대 미술가들을 소개한 '디스커버리Discoveries' 등의 섹션을 가득 채웠다. 또한 아티스트, 큐레이터, 컬렉터, 건축가, 비평가 등 다양한 미술관계자들이 참여하여 작가와 갤러리스트의 관계, 아시아의 뮤지엄 짓기 열풍, 비평과 미디어의 역할, 미술 시장이 판단하는 예술 작품의 질 등 현재 미술계의 쟁점들을 논의할 수 있는 대담 및 살롱 형식의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주최 측은 아트 페어가 단순히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동서양의 문화예술이 만나고 교류하는 담론 생성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었다1).

 
    
 
아트 바젤 홍콩 ⓒ 문호경

아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갤러리가 전체 갤러리 중 50%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갤러리, 갤러리인, 국제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PKM갤러리, 갤러리스케이프(이상 갤러리 섹션), 313아트프로젝트, 카이스갤러리, 갤러리엠, 박여숙화랑(이상 인사이트 섹션) 등 총 11곳이 참가 갤러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국내 및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다2). 해외 갤러리 소속으로 출품된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장 곳곳에서 보였고, 긴 시간을 할애하며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보는 관람객들의 모습 또한 자주 볼 수 있었다.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한 국내 갤러리 및 한국 작가 작품들 ⓒ 문호경

 
인카운터 섹션의 양혜규, 오승열의 작품 ⓒ 문호경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을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페어 기간 동안 홍콩의 문화예술공간들이 준비한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이 한 몫을 담당했다. 홍콩 미술관Hong Kong Museum of Art의 <The Origin of Dao: New Dimensions in Chinese Contemporary Art>, 홍콩 아트센터Hong Kong Arts Centre의 <1st Annual Collector's Contemporary Collaboration-May Dialogues>,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Asia Society Hong Kong Center의 <Light before Dawn: Unofficial Chinese Art 1974-1985>, 캐틀 디포 아티스트 빌리지Cattle Deport Artist Village의 <I Think It Rains>, 엠 플러스M+의 <Mobile M+: Inflation!>, 그리고 웡 척 항Wong Chuk Hang 및 애버딘Aberdeen 소재 갤러리 및 작업실의 <Wong Chuk Hang Art Night>와 차이 완Chai Wan 지역 작가들의 <Chai Wan Art & Design Open Studios> 등 페어 기간 내내 홍콩 전체를 거대한 미술관으로 만드는데 이들은 일조를 했다. 또한 홍콩의 크고 작은 문화예술 공간들에서 개최하는 1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소책자가 무료로 배포되었고, 페어 장소인 홍콩 컨벤션 전시 센터에서 다소 거리가 먼 곳에서 열리는 행사를 위해 셔틀버스가 제공되어 아트 페어에 온 관람객들이 페어 외에도 홍콩의 다양한 미술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필자는 페어 기간 중 가고시안Gagosian, 레만 머핀Lehmann Maupin, 벤 브라운 파인 아트Ben Brown Fine Arts, 사이먼 리Simon Lee, 페로틴Perrotin, 화이트 큐브White Cube 등 홍콩에 진출해 있는 국제적 갤러리들이 별도로 개최한 전시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빠르고 두텁게 홍콩에 미술 자본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4).

다카시 무라카미의 전시회가 열린 갤러리 페로틴 ⓒ 문호경


누구를 위한 아트 페어인가?

현재 홍콩은 뉴욕과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미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위치,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뿌리내린 영어권 문화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언어 장벽이 낮다는 점, 무엇보다 면세 구역이라는 매력적인 조건은 오랫동안 홍콩을 상품 및 금융 교역의 중심지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이전부터 소더비, 크리스티 등의 경매회사들이 홍콩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아시아의 경매 자본을 흡수하면서, 홍콩은 중국 본토 미술의 붐과 아시아 미술의 시장 확대를 이끌어 왔다. 2009년부터는 벤 브라운 파인 아트를 필두로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홍콩에 들어와 지점을 운영하게 되면서, 홍콩의 미술 시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홍콩이 '외부인들'의 거래를 위한 플랫폼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웨스트 퀄룬 문화 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조성, 센트럴 폴리스 스테이션Central Police Station의 재활성화 프로젝트, 유서 깊은 건물을 전시실과 잔디밭을 가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최근에 문을 연 '오이Oi!' 등 홍콩 정부는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도시를 재생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포 탄Fo Tan과 완 차이Wan Chai 지역과 더불어, 홍콩섬 동부의 차이 완과 남부의 웡 척 항, 애버딘, 압 레이 차우Ap Lei Chau, 틴 완Tin Wan 등의 지역이 미술가들의 작업실과 문화예술공간이 모인 새로운 클러스터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처럼 홍콩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는 예술 인프라와 생태계는 머지않아 아시아 문화전쟁의 전진기지이자 동서양 문화예술의 매개자로서 홍콩 미술계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홍콩의 미술인들이 아트 바젤 홍콩을 통해 보다 폭넓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홍콩을 국제적인 미술 현장의 중심에 견고하게 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갤러리들과 함께 아트 페어라는 '공정한' 시장에서 겨뤄보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현대 미술 세계의 복합성과 훈련으로부터 얻어진 기술 및 지식을 이해하고... 창조적인 과정과 그 결과물에 대한 애정과 친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그러한 관점이 홍콩의 시각 예술 전반에 퍼지는데 잠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홍콩의 미술계는 희망하고 있다5). 하지만 홍콩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든지 홍콩에서 열리는 각종 아트 페어에 수시로 얼굴을 내밀든지간에 해외 갤러리들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상업성이며, 그들이 홍콩에 와서 영업을 하더라도 관심은 홍콩의 로컬 미술가 발굴이 아니라 해외 작가를 소개하는데 있고 자신들이 관리하는 작가들의 작품 판매만 신경 쓸 것이기 때문에, 정작 홍콩 미술의 발전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다6).


홍콩 미술, 그 존재에 관하여

홍콩에 머무는 동안 필자는 홍콩 미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홍콩 예술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흩어지고, 수동적이며, 연결되지 않는 다원성", "과장하기 보다는 내향적인 표현에서 만족을 찾는 기질", "홍콩 컬렉터 및 컬렉션의 스토리가 홍콩 미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등 홍콩 미술의 특징을 찾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대중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s'으로서 예술가가 갖는 사회적 책무와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건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홍콩의 역사와 홍콩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접근, 현대 미술 관련 공공시설이 부족한 홍콩 구석구석을 '벽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어보려는 아이디어 등 다양한 시각과 실험을 통해 홍콩 미술의 정체성을 찾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7). 특히 '수묵화'에 대해 고조되고 있는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콩미술관의 기획전 <A Hundred Chinese Paintings from the Hong Kong Museum of Art>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수묵화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한 알리산 파인 아트Alisan Fine Arts, 그로토 파인 아트Grotto Fine Art 등의 홍콩 갤러리 부스에서도 상당수의 수묵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한아트 티지 갤러리Hanart TZ Gallery는 키우 지지에Qiu Zhijie의 개인전 <Birds Eye's View>를 별도로 개최했고, 크리스티가 페어 기간 동안 중국현대수묵화 프라이빗 세일을 실시하는 등 수묵화에 대한 관심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8).

하지만 글로벌 미술 시장으로서 홍콩에 거는 핑크빛 기대와 홍콩 미술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과 함께 우려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홍콩에서 만난 한 큐레이터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비싼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홍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9). 게다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건물과 지역에 대해 부동산 개발업자 및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홍콩에서도 이슈화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홍콩의 문화예술인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환 이후 중국 본토와는 독립적인 법과 행정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 홍콩의 언론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10). 그래서인지 홍콩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계속해서 보장되리라 낙관하기 어려우며 예술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한 미술관계자의 말이 기우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6․4사건(천안문 사태) 기념 홍콩 시민 행진(2013.5.26) ⓒ 문호경

이러한 가운데 홍콩의 대표적 대안공간인 파라 사이트 아트 스페이스Para Site Art Space가 개최한 전시회 <A Journal of the Plague Year: Fear, ghosts, rebels, SARS, Leslie and the Hong Kong story>는 홍콩에 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이 전시는 '전염병'의 역사적 배경과 서사 구조, 홍콩의 문화 및 정치 관계망 속에서의 함의 등을 다루면서, 2003년 창궐한 사스로 인해 취약해진 사회 구조 안에서 전염병이 (재)생산해낸 물리적․상징적 효과와 당시 홍콩 사회가 겪었던 경험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각종 자료와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11). 특히 그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배우 장국영의 존재와 그의 성정체성이 갖는 의미를 홍콩의 사회적 맥락에서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그를 주제로 제작된 사진 및 비디오 작품, 팬들의 소장품 등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에 짙게 배어 있는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가 아직도 홍콩 사회의 심연에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파라 사이트 아트 스페이스의 전시 <전염병의 해에 관한 일기> ⓒ 문호경 

'한 나라 두 체제'가 끝나는 2046년이라는 또 한 번의 기한을 앞두고, 1984년 홍콩 반환 협정 체결 이후 팽배했던 '시한부' 정체성이 여전히 홍콩 사회에서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한된 정체성이라고 할지라도, 반환 이전에 홍콩이 가졌던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홍콩은 지금 특별한 정치사회구조를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문화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를 통해 현대 미술의 허브로서 자신의 입지를 빠르게 넓혀 나가고 있다. 그리고 홍콩 미술인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문화지형 안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홍콩, 잔치는 시작됐다!


주)

1) 아트 바젤 아시아 디렉터인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유럽의 아트페어가 홍콩으로 와서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상호 교류를 하는 것이, 갤러리 입장에서는 보다 전문화되는 기회가 되고 소장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해서 다른 나라의 미술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면서, 아트 바젤 홍콩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시아 미술시장 발전, 성숙한 갤러리와 건전한 거래 문화가 필수", 경향신문, 2013년 4월 2일자.

2)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의 거래액은 약 5천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갤러리들의 판매성적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한 매체에 따르면 카이스갤러리는 5월 22일 VIP 프리뷰 당일 원성원의 작품 4점을 판매했고, 원앤제이갤러리가 출품한 박진아의 회화작품은 국내 컬렉터에게, 강홍구와 이정의 작품은 각각 베이징과 홍콩 컬렉터에게, 오승열의 조각품은 포르투갈 컬렉터에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학고재갤러리는 중국, 홍콩, 한국, 태국, 호주의 컬렉터에게 이세현, 홍경택 등의 작품을 포함해서 8여점을 판매했다고 이 매체는 전하고 있다.

3) 카탈로그 및 각 갤러리 부스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을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4)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동안 'Asia Contemporary Art Show', 'Asia International Arts & Antiques Fair', 'Bank Art Fair' 등 5개의 아트 페어가 동시에 개최되었다.

5) Rachel Smith, "Art Basel Hong Kong 2013: Bigger and better?", Art Map Express, May 2013, pp.1-2.

6) Samwai Lam, "Hong Kong: Who Benefits from It?", a.m. post, Issue 95, May 2013, pp.22-23.

7) 미술 전문 잡지 『LEAP』는 최근 특별 기획을 통해 홍콩의 문화예술 지형 전반에 관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Hong Kong, Mon Amour", LEAP, April 2013, pp.89-163.

8) 홍콩 미술의 주체성을 묻는 질문에 엠 플러스 미술관의 큐레이터 피 리Pi Li는 1960년대 홍콩에서 시작된 '실험적인 수묵화 운동experimental ink painting movement'이라고 답했는데, 그는 홍콩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묵화에 대한 관심이 중국 본토의 수묵화를 재조명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홍콩미술관 큐레이터인 이브 탐Eve Tam은, 홍콩미술관 초대관장인 로렌스 탐Laurence Tam이 재임 기간(1975-1993) 동안 새로운 수묵화 운동 발전에 관계했다고 밝혔다. "Hong Kong, Mon Amour", LEAP, April 2013, p.154.

9) 그로토 파인 아트의 관장인 헨리 우 웽Henry Au-Yeung도 운영비 및 임대료 증가가 점점 더 홍콩 예술가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The Art World's Responses to the Global Market", a.m. post, Issue 95, May 2013, p.27.

10) 국경 없는 기자회가 올 해 발표한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홍콩은 전년도보다 4단계가 낮아진 58위를 기록했다(중국은 173위).

11) 2003년은 사스, 이로 인한 관광산업 침체와 경제 불황, 악화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책으로 시행된 '개인 방문 제도(이후 중국 본토 주민들은 개인 자격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됨)' 등 홍콩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1997년 홍콩 반환 효과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촉발된 시점이다.

2013. 8. 1.

창조적 비즈니스 성공을 위한 열 가지 비결


온라인 서점 아마존 서핑 중, 우연히 발견한 책 내용의 일부.

자기개발서에 나올법한 이런 종류의 '가르침'을 평소에는 영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요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팀원들과 함께 생각해볼만한 대목이 몇 군데 있어서 짬을 내어 번역해 보았다.


<레베카의 창조적 비즈니스 성공을 위한 열 가지 비결>

1. 휴식을 취해라.

2. 유사한 사업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라.

3. 맡겨라, 맡겨라, 맡겨라.

4. 값을 매기는 일을 체계적으로 하고 그래야 돈을 번다는 것을 확실히 해라!

5. 당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그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해라.

6.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라. 그리고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비용을 지불해서 처리해라.

7.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것!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든 일일 뿐이다.

8. 이 일이 '당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라. 당신이 결정권자이다. 이 말은 모든 것을 당신이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의 현실과 주변 여건을 창조해낼 자유가 당신에게 많이 있다는 뜻이다.

9. 만약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면, 바꿔라.

10. 진심이 되어라. 진심어린 모습은 드러날 것이고, 세상은 반응할 것이다.


'Rebecca's Tap Ten Tips for Creative Business Success'
quoted from Craft Business Heroes - 30 Creative Entrepreneurs Share the Secrets of Their Success (2012)

ⓒ Alison McNicol; Ho Kyung Moon (translation in Korean)

2013. 7. 26.

"홍콩의 디자인 체어, 세계인과 만나다"


지난 5월 '아트 바젤 홍콩'에서 관람/경험했던 <홍콩 디자이너 체어 살롱: 전망 좋은 의자들 Hong Kong Designer Chairs Salon: Seats with a View>에 관한 짧은 리뷰.

최근의 아트 페어에서 볼 수 있는 트렌드 중 하나인 '디자이너 의자'로 이루어진 휴식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금 늦더라도 꼭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었는데, 다행히 디자인정글에서 기회를 주셨다.

고맙습니다, 길영화 & 정은주 기자님!


* 디자인정글 기사 웹사이트:
http://magazine.jungle.co.kr/cat_magazine_special/detail_view.asp?pagenum=1&temptype=5&page=1&menu_idx=141&master_idx=15543&main_menu_idx=46&sub_menu_idx=47

'아트 바젤 홍콩'의 <홍콩 디자이너 체어 살롱: 전망 좋은 의자들> ⓒ 문호경

2013. 7. 4.

미술 생태계 사슬 (Art ecological chain)


홍콩에서 발행되는 예술잡지에 실린 글. 우리나라 상황과 견주어볼 때 유사점 및 시사점을 던져 준다.


미술 생태계 사슬 (Art ecological chain)


글: Samwai Lam / 그림: Justin Wong / 영문번역: Summer  / 국문번역: 문호경


미술 생태계 사슬이란 먹이 사슬에서 온 개념이다. 먹이 사슬은 영국의 동물학자 찰스 서덜랜드 엘튼Charles Sutherland Elton이 1927년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다양한 종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서로 연결된 시스템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며 어떻게 에너지가 흐르는지 보여준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작은 변화가 전체 생태계 사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먹이 사슬의 개념을 미술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은,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핵심 인물들과 그들간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세계적인 갤러리들과 예술 공간들을 끌어들여 어떤 도시에서 문을 열게 하려면, 좋은 미술 생태계 사슬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술 작품의 가격과 가치를 결정하고 자리 잡게 하는 일에 6명의 핵심 역할이 관여하고 있고, 이들은 전체 미술 생태계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art ecological chain ⓒ art plus; a.m. post

아티스트
미술계에서 아티스트는 제작을 맡고 있다. 물론 그들은 '제조manufacture'라는 말에 민감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은 상당한 독창성과 집중력을 요하며, 그들은 지속되는 가치를 지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현대 사회와 관련된 콘텐츠를 창조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창조적인 과정에 있어서 '공장' 방식을 이용한다. 가장 잘 알려진 예로는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가 있다.

큐레이터
큐레이터는 전문가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따라 잡고, 구성하고, 작품을 디스플레이하고 미술 전시회를 운영한다. 그들은 종신 큐레이터가 되거나 독립 큐레이터가 될 수 있다. 브루스 알트슐러Bruce Altshuler의 책 <전시의 아방가르드: 20세기 신미술The Avant-Garde in Exhibition: New Art in the 20th Century>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 파리에서 조직된 살롱전Salons에 이미 큐레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당시에는 큐레이터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갤러리
갤러리는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디스플레이 또는 판매하는 전시 공간이다. 갤러리는 아티스트의 가치를 고려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갤러리 이름 또는 아티스트-갤러리간 계약에 서명된 이름은, 사람들에게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때로는 갤러리 디렉터가 미술작품을 관람객에게 완벽한 태도로 보여주는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비평가
비평가와 아티스트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협력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평가에게 난처한 아티스트도 있을 수 있다. 좋은 미술 생태계 사슬에서, 아티스트는 비평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결코 비평가를 떠날 수 없다. 제리 살츠Jerry Saltz와 로버타 스미스Roberta Smith와 같은 한 두 명의 유명하고 뛰어난 비평가들은 아티스트의 경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홍콩 예술 발전 위원회Hong Kong Arts Development Council(ADC)는 첫 번째 ADC 비평상ADC Critic's Prize을 준비하면서 미술 비평에 갑자기 관심을 쏟았다.

컬렉터
컬렉터는 미술 생태계에서 상대적으로 비밀스러운 존재이고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들은 갤러리나 옥션 하우스를 통해 미술 작품을 구입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컬렉터는 재계의 거물급 인사나 유명 연예인처럼 부자일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회사원과 같은 새로운 미술 컬렉터가 있다. 다이스케 미야츠Daisuke Miyatsu가 <겐다이 아토 오 카오Gendai āto o kaō>라는 책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컬렉터는 시장 가치에 신경 쓰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옥션 하우스
옥션 하우스와 아티스트의 관계는 생각하는 것만큼 직접적이지 않다. 실제로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옥션에 거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다. (위대한 미술가들의 걸작들을 볼 수 있는 옥션 프리뷰가 열릴 때를 제외하고는.) 미술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라 손튼Sarah Thornton의 책 <미술계의 7일Seven Days in the Art World>에서 지적되었듯이, 옥션은 마치 고급화된 장례식장 같다. 어떤 옥션 하우스는 미술 갤러리를 개관하는 것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예를 들어 소더비는 홍콩 애드미럴티 지역의 퍼시픽 플레이스에 미술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 6명의 핵심 인물들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려면 전시 공간, 미술관, 박물관 등과 같은 몇 가지 다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아티스트와 미술 교육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용에 대한 전망은 홍콩의 미술 대학 졸업생들에게 참담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트 어드바이저, 미술품 복원가, 미디어 등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모두 제 역할을 수행하고, 미술의 즐거움을 나누고, 상상된 군락에서 각자 일부분을 담당한다.

ⓒ art plus, Issue 19 May 2013; a.m. post, Issue 95 May 2013; Ho Kyung Moon (translation in Korean)

2013. 6. 30.

과자 봉지에 담긴 가르침


봉지 과자 패키지의 품격을 올린 신의 한수?!
.
.
.

"다른 누군가가 너에게 정답을 강요하지만,
정답? 그런건 없어. 답은 언제나 너에게 있어.
가끔씩은 있는 그대로 즐겨.
조금 삐뚤어져도 돼.
삐뚤어지더라도 언젠간 세상과 교차할거야.
뛰는 너의 가슴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가봐.
지금 너의 가슴은 뛰고 있니?"

롯데제과 도리토스 나쵸치즈맛 포장봉지 (뒷면) ⓒ 문호경

2013. 6. 26.

On My Writing


Whenever I write something, I always ask. "What do you write for?"

Gathering hints / mapping and analysing features / building up pictures and stories are complex and time-consuming processes, and sometimes too much information and experience make me feel confused.

However, after finishing the hard work I can be proud of myself and have the energy to explore new territory.

I do hope my writing will be well worth the effort and valuable contribution to someone, even one person.

A week has gone with a draft...

2013. 6. 10.

제13회 서울LGBT영화제 '장국영 추모 특별전': <천녀유혼 (A Chinese Ghost Story, 1987)>, <영웅본색 (A Better Tomorrow, 1986)>


이런 저런 이유로 미뤄두었던 일, 6월이 가기 전에 완성해야 할 원고, 밀린 이메일 답장, 그리고 새로운 일거리(놀거리?) 마련을 위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 내가 요즘 즐기는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영화 관람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 편씩 그것도 영화관에 직접 가서 커다란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또는 IPTV 등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 화면 속 공간과 소구 배치, 극적 효과를 살리는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의 모든 신체 감각을 동원해서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느낄 때 얻게 되는 희열과 감동이란 영화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특히 보고 싶은 영화일수록 시간과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극장에서 보는 편이다.

지난 주말동안 영화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을 극장에서 관람했다. 1987년에 국내에서도 개봉한 이 두 영화는 우리나라 남성들(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 영화를 몇 번 봤는지 경쟁하게 하고, 극장에서 내려진 후에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대기자 목록까지 만들어 내면서 1980년대 후반 홍콩 영화의 국내 인기 몰이의 시작을 알린 작품들이다. 특히 최가박당 및 성룡식 홍콩 영화와 달리, <첩혈쌍웅 (1989)> <열혈남아 (1989)> <지존무상 (1989)> <천장지구 (1990)> <무간도 (2002)> 등으로 이어지는 '홍콩 느와르 (Hong Kong Noir)'라는 새로운 홍콩 영화 장르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영웅본색>을 꼽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은 이후 각각 3편까지 시리즈로 제작되어 일종의 브랜드로서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면서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 들였는데, 그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출연 배우들 때문이었다. 바로 왕조현, 장국영, 주윤발!!!

2003년에 세상을 떠난 장국영을 추모하기 위해 이번 제13회 서울LGBT영화제(2013.6.6-6.16, 서울아트시네마/KU씨네마테크 http://www.selff.org)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한 회씩만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표를 예매했다. 금요일부터 상영이 시작된 장국영 영화 가운데 <천녀유혼>과 <영웅 본색>은 나 역시 비디오테이프로 수없이 보았고 특히 <영웅본색>은 3편까지 아예 비디오 CD를 구입해서 소장까지 하고 있지만, 1987년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관람을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 영화들을 '시네마 키드'인 내가 왜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했는지 지금에 와서 유추해 보면, 당시 개봉관이었던 서울의 아세아극장(천녀유혼), 화양/대지/명화극장(영웅본색)이 '후져서' 극장에서 이 영화들을 안 본 것이 아니라, 아마도 흥행 성적 저조로 인해 빨리 간판을 내려야 했고 삼류 극장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입소문을 타고 이 영화들이 인기를 얻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내가 처음으로 '공유 재산'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학교 친구들과 함께 돌려 보던 비디오테이프 때문이다!)

드디어 극장 안 조명이 꺼지고 시작된 이 두 편의 '고전 영화'는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배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을 다시금 상기키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서늘한 미녀 귀신 섭소천과 명랑 순수한 청년 영채신의 애틋한 사랑(천녀유혼), '조직'의 질서와 냉정함을 바탕으로 한 사나이들의 의리와 형제애(영웅본색)는 여전히 강렬하게 내게 다가왔다. 왕조현과 장국영의 '목욕통' 장면의 2차원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즉 왕조현의 벗은 상반신 앞면을 볼 수 있을까 싶어서 화면의 측면에서 몇 번이고 봤다는 친구의 안타깝고 어이없는 고백이 얼토당토하지가 않았던 것은, 당시 소천 역의 왕조현은 정말로 "사람이 아니무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여신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내가 영화 속 왕조현의 모습을 노트에 그려놓기까지 했을까. 무엇보다 영채신 역 장국영의 상큼 발랄함은 반짝 반짝 빛을 내면서 나로 하여금 '호러 사극' 영화를 즐기면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어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천녀유혼> (1987, 감독: 정소동) ⓒ 제13회 서울LGBT영화제

<영웅본색>의 '오빠'들은 또 어떠한가. 집에서나 직장(국제 위조지폐 조직)에서나 언제나 '큰 형'이었던 자호(적룡)와, 형을 좋아하고 그만큼 형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자걸(장국영), 자호와의 우정을 몸소 실천하는 마크(주윤발)는, 의리에 죽고 사는 남자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상화시켜 보여주었다. 주윤발의 '성냥 씹기' 한 번 안 해본 친구들이 없었고, 그의 '라이터 불 먹기'는 당시 좀 논다는(?) 친구들이라면 죄다 따라 해보는 진기명기였다. 또한 영화 대사들은 일종의 경전처럼 여겨지면서 쉬는 시간 교실 뒤에서 친구들끼리 영화 속 장면들을 단막극으로 연기할 수 있을 정도로 웬만한 아이들은 줄줄 외우고 다닐 지경이었다. 형에 대한 애증에 힘겨워하는 장국영에게 "형제란..."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죽어가는 주윤발을 보면서 폭풍 눈물을 쏟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게다가 장국영이 불렀던 영웅본색(이번에 상영한 1편) 주제가 '당년정'은, 홍콩 사대천왕인 곽부성, 장학우, 유덕화, 여명이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그해 홍콩 금장상 시상식에서 부르고 난 후 그의 추모곡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이번에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도 짠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영웅본색> (1986, 감독 오우삼) ⓒ 제13회 서울LGBT영화제

그 시절 그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며칠째 같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아마도 그들 모두 나와 같은 느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영화가 슬퍼서 눈물이 핑 도는 게 아니라, 식어버린 세 번 째 도시락을 먹어가며 심야까지 버텨야 했던 정말 지루하고 삭막했지만 그 안에서조차 매일 매일의 즐거움을 추구했던, 그 아름다웠던 하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한참동안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일렁이며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그들 역시 체험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특히 극장에서) 다시 보는 경험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능력은, 장소와 시간의 특정성이 만들어내는 '호출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 곳'에서 '그 때'에 '그 영화'를 보았던 행위는 제한된 조건들의 교집합이라는 희소성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나 자신을 불러내어 그 당시의 나로 되돌려 놓는 힘을 가진다. 마치 옛날에 살던 집이나 다니던 학교를 지날 때 어린 시절의 가족, 친구 등에 대한 생각이 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당시 나의 모습, 내가 했던 고민과 겪었던 각종 사건 사고 등이 순식간에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모자란 이 두 영화는 26년 전이라는 오래되고 희미해진 시간의 퍼즐을 맞춰 보겠다는 나의 바람과 계획이 쓸모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대부분 파편화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기억들은 조각조각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나의 머릿속, 몸속 어딘가에 조용히 숨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매우 기능이 뛰어난 타임머신으로, 나의 과거와 기억을 불쑥 꺼내 내 앞에서 선명하게 펼쳐 보여준다.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PS: 저 이번 주에도 두 편 더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 보는데요, 함께 보시게 될 관람객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드립니다. 엔딩 크레딧 다 올라가고 극장 불 켜지자마자 "ㅇㅇㅇ 완전 멋져" "ㅁㅁㅁ이 '갑'이야" "** 부분은 잘 기억이 안 났는데 이제 보니 생각나네" 등 영화 감상 코멘트는 조금만 있다가 하시면 안 될까요? 이번 '장국영 추모 특별전'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이미 수작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이구요, 낮 시간에(그것도 평일에) 영화관에 가서까지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표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런 멘트들은 영화 상영 후 이어지는 감동의 여운을 홀딱 깨트려 버리거든요. 게다가 이번 특별 상영은 '추모' 기념이잖아요. 우리, 조금씩만 서로를 배려해 주자구요!

2013. 5. 31.

출장 (2013.5.21-5.30 / Hong Kong) 후기


1. 나는 무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열흘 전 새벽바람을 맞으며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집 근처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등에 진 배낭이 꽤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공항에서 무게를 재보니 8kg도 채 안되었다. 나는 실제 무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낀 것을 부족한 수면 탓이라 여겼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약 세 시간 동안 가방을 쌌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여행 관련 책자와 세면 용품 등을 과감히 버리면서까지 한 치의 남는 공간 없이 배낭과 노트북 가방을 채우고 나서 들어보니 살짝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무게였다. 부랴부랴 내가 이용할 항공편의 수하물 제한 조건을 찾아보고서야 아무래도 공항에서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 상점에서 비닐 백을 구입했다.

숙소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우스웠다. 내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한손에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구부정하게 한 걸음씩 옮기면서, "나에게도 괴력이란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오버 차지'에 대한 걱정으로 저울부터 찾은 나는 실제 중량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낭: 23kg --->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 노트북 가방: 10kg ---> 예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렇다. 나는 무게에 대한 감각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끔은 괴력을 발휘해서 내 능력 밖의 무게를 들기도 한다.

'Symphony of Lights' in Hong Kong ⓒ 문호경


2. 모기가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

전시회를 보러 간 그곳은 숲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건축물 자체가 유서 깊고 복합적인 공간이라 방문객이 건물 안팎을 시간을 갖고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장소였다. 재미있는 건물 구조와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연적 및 인공적 요소들을 흥미롭게 감상하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다리가 가렵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냥 풀벌레이겠거니 하면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는데, 어느 순간이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엄습했다. 그 순간 검은색의 작은 모기 두 마리가 나의 왼쪽 정강이 위에서 포식 중인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로 다리를 씻어보았지만, 가려움은 도저히 나아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미친 듯이 두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잠깐 동안 불현듯 든 생각은, 모기에 물려서 미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뇌염모기'와 같은 종류에 물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모기에게 집중적으로 물릴 경우 가려움증으로 인한 '흥분 상태'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몸소 체험했다. (지금 나는 모기에게 뜯긴 30여 군데를 치료 중이다)


3. 백문이 불여일견.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지식과 정보와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번 출장에서 가져 온 15kg 상당의 자료들은 물론이거니와 머리와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아 온 기억과 느낌들은, 내게 또 하나의 계기와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은, 온라인과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제부터 하나씩 정리할 일이 남았다!!!)

Hong Kong Museum of Art ⓒ 문호경


4. 세상은 좁다.

이번 출장에서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또는 최근에 알게 된 분들을 예기치 않게 만날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 동시에 반가웠다.

하지만 내가 더 신기하고 반가웠던 것은 영국에서 다니던 학교 동문과 동창들을 만난 일이다. 사실 이번에 만난 그 친구도 엄격하게 말하자면 '내 친구'는 아니다. 같은 해에 공부를 시작했지만 전공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다보니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서나 볼 수 있던 그와 나는, 간혹 전시회에서 만날 때에만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그런데 이번에 관람한 아트 페어의 한 전시 부스에서 나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졸업 작품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비록 스케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자기 나라 갤러리에 소속되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그를 대견하게 여기면서 다른 전시 부스들을 둘러보고 있던 나의 눈에 갑자기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 ㅇㅇ 맞지?"

"너 이름이 뭐였더라...?"

서로의 안부 챙기기와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헤어지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언젠가 또 만나겠지? 예전에 런던에서 전시회 때마다 만났던 것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말이야."

이 외에도 나보다 훨씬 먼저 다른 전공으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나서 현재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 박사과정을 마치고 독일에서 '포닥'을 밟고 있는 같은 센터(일종의 단과대학) 선배 등 작업실과 프로젝트 전시회와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동문수학생'들을 직접 만나게 되거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학교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공부를 한 나로서는 '모교'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새삼 세상이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rt Basel in Hong Kong ⓒ 문호경


5. 한국은 사계절을 가진 나라이다.

섭씨 25-32도의 기온과 80-95%의 습도를 매일 매일 견디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정말 상쾌하다. 봄가을이 짧아져서 이제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 지방이 되었다고 몇 년 전부터 외쳐대던 나이지만, 이제 그런 말은 당분간 하지 않으련다. 한국은 아직도 봄바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니까.

2013. 5. 15.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추천작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시즌이 돌아오고 있다 (2013.5.24 ~ 5.30 메가박스 신촌). 한때는 주중 및 주말의 일반상영 작품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야상영작까지 챙겨보던 나였지만, 이제는 기운이 딸려서 도저히 그런 만용은 부릴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제 기간 내내 출장 중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찾아서 볼 요량으로 '위시 리스트'를 미리 추려보았다.

ⓒ 제1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 믿을만한 감독의 믿고 보는 작품
- 샐리 포터, <진저 앤 로사 Ginger & Rosa>, 2012
- 마가레테 폰 트로타,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2012
- 샹탈 아커만, <잔느 딜망 Jeanne Dielman>, 1975
- 사라 폴리,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Stories We Tell>, 2012
- 김태용, <그녀의 연기 You Are More Than Beautiful>, 2012

2. 장소 - 공간 - 역사 - 문화 - 사람
- 수 프리드리히, <도시, 예술가, 리노베이션 Gut Renovation>, 2012
- 초 삐온, <판소단 스트리트 62번가 No. 62, Pansodan Street>, 2013


* 벌써 매진이 속출하고 있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서두르셔야 할 듯...

**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용의자 X>, <복숭아 나무>, <스토커>, <두 개의 문> 등도 상영되니, 개봉관에서의 관람을 놓쳤던 분들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보세요.

***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얼마 전 '오픈 하우스 서촌'에 참여한 옥인상영관에서 틀어주셨던 영화들 중 한 편이자,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감독 데뷔작인 <주리 Jury>도 이번 영화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왕년의 스타'가 벌이는 난투극이 정말 끝내주던걸요. 24분간의 런닝타임동안 저는 과연 몇 번이나 웃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