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6.

전용일 금속공예전 <사물의 자리> (2014. 6. 5 - 6. 25 / 갤러리 메종르베이지)


전용일 금속공예전 <사물의 자리>
2014. 6. 5 - 6. 25 / 갤러리 메종르베이지


최근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의 소장 작품 목록에까지 이름을 올린, 금속공예가 전용일의 <사물의 자리> 입니다.

정갈하면서도 위트 있는 작품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전시회입니다. 오롯이 외투가 걸려 있는 옷걸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공예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이슈들을 고민하면서, 작가이자 교육자로서 무엇보다 공예인으로서 자신의 신념과 태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의 '작가 노트'는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만듭니다.

조용한 아침, 다시 가서 보고 싶은 전시입니다.


ⓒ 사물의 자리 2014


"여기 30여점의 작품은 주로 손과 손도구로 제작한 공예품이다. 나무를 사용한 몇 점을 제외하면 모두 구리, 구리합금, 은 등 비철금속의 판재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금속판을 성형하는 판금기술이 이들 작업의 중심에 있다. 금속 평판을 망치와 모루(받침쇠)를 사용해 늘여 변형하고, 매끄럽게 고르고, 이들을 서로 이어 붙여 입체의 외피를 만들거나 열린 형태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얼개이다. 금속판을 점진적으로 변형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하는 망치질은, 마치 점묘를 통해 서서히 형상을 드러내는 회화 작업과 유사하다. 또한 성형한 각각의 형상을 정교하고 수리적인 접합을 통해 공간 구조물로 구현하는 과정은 한 채의 집짓기와 닮아있다. 금속공예는 가장 얇은 벽으로 지은 건축물과 같다.

이들은 심미성을 앞세운 미술품이면서 동시에 생활공간에서 사용하는 일상 사물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접촉하고 사용하는 대상이다. 사물 속에서 심미성과 기능성을 함께 추구하는 일은 어렵고도 흥미롭다. 이 과정을 통해 작품 속에는 조화, 절제, 함축이라는 미덕이 담긴다. 기능에 대한 고려가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에 내 작업은 투명하고 명쾌해진다. 자유지상주의자라면 공예가나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나는 사용과 무관한 미술품 속의 아름다움도 즐기지만, 기능적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사물이 한층 경이롭다. 이들 속에서 종종 시적 함축성을 발견한다. 보는 그림, 읽는 책보다 중요한 것은 내 손으로 쥔 숟가락이나 아내의 손이다.

사물도 자리가 필요하다. 여기 있는 작품들은 갤러리 보다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빛을 발하도록 의도된 것들이다. 이들 공예품은, 자리가 바뀌어도 크게 의미가 변하지 않는 자율적인(혹은 순수한) 미술품과 다르다. 공예품은 다른 사물들과 포개진 채 삶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서서히 의미를 드러낸다. 현란한 시각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미술관, 현실과 격리된 화이트큐브 속에서 많은 공예품들이 존재론적 딜레마를 겪는다. 또한 이런 연유로 인해 공예가 변하기도 한다. 이벤트와 퍼포먼스에 골몰하고 실물보다 이미지를 앞세우는 동안, 사물의 자리는 애초 작품의 의도 속에 포함되지 못한다. 사람이 그렇듯 사물도 자리가 필요하다."

- 작가 노트




 






 ⓒ 문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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