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1.

출장 (2013.5.21-5.30 / Hong Kong) 후기


1. 나는 무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열흘 전 새벽바람을 맞으며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집 근처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등에 진 배낭이 꽤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공항에서 무게를 재보니 8kg도 채 안되었다. 나는 실제 무게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낀 것을 부족한 수면 탓이라 여겼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약 세 시간 동안 가방을 쌌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여행 관련 책자와 세면 용품 등을 과감히 버리면서까지 한 치의 남는 공간 없이 배낭과 노트북 가방을 채우고 나서 들어보니 살짝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무게였다. 부랴부랴 내가 이용할 항공편의 수하물 제한 조건을 찾아보고서야 아무래도 공항에서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근처 상점에서 비닐 백을 구입했다.

숙소에서 나와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우스웠다. 내 키만 한 배낭을 메고 한손에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구부정하게 한 걸음씩 옮기면서, "나에게도 괴력이란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오버 차지'에 대한 걱정으로 저울부터 찾은 나는 실제 중량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낭: 23kg ---> 예상보다 훨씬 가벼웠다. / 노트북 가방: 10kg ---> 예상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그렇다. 나는 무게에 대한 감각이 매우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끔은 괴력을 발휘해서 내 능력 밖의 무게를 들기도 한다.

'Symphony of Lights' in Hong Kong ⓒ 문호경


2. 모기가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다.

전시회를 보러 간 그곳은 숲속에 위치해 있었는데, 건축물 자체가 유서 깊고 복합적인 공간이라 방문객이 건물 안팎을 시간을 갖고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장소였다. 재미있는 건물 구조와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연적 및 인공적 요소들을 흥미롭게 감상하면서 카메라에 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다리가 가렵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냥 풀벌레이겠거니 하면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는데, 어느 순간이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엄습했다. 그 순간 검은색의 작은 모기 두 마리가 나의 왼쪽 정강이 위에서 포식 중인 현장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차가운 물로 다리를 씻어보았지만, 가려움은 도저히 나아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미친 듯이 두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잠깐 동안 불현듯 든 생각은, 모기에 물려서 미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뇌염모기'와 같은 종류에 물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모기에게 집중적으로 물릴 경우 가려움증으로 인한 '흥분 상태'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몸소 체험했다. (지금 나는 모기에게 뜯긴 30여 군데를 치료 중이다)


3. 백문이 불여일견.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지식과 정보와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이번 출장에서 가져 온 15kg 상당의 자료들은 물론이거니와 머리와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아 온 기억과 느낌들은, 내게 또 하나의 계기와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은, 온라인과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이제부터 하나씩 정리할 일이 남았다!!!)

Hong Kong Museum of Art ⓒ 문호경


4. 세상은 좁다.

이번 출장에서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또는 최근에 알게 된 분들을 예기치 않게 만날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 동시에 반가웠다.

하지만 내가 더 신기하고 반가웠던 것은 영국에서 다니던 학교 동문과 동창들을 만난 일이다. 사실 이번에 만난 그 친구도 엄격하게 말하자면 '내 친구'는 아니다. 같은 해에 공부를 시작했지만 전공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다보니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서나 볼 수 있던 그와 나는, 간혹 전시회에서 만날 때에만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그런데 이번에 관람한 아트 페어의 한 전시 부스에서 나는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졸업 작품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비록 스케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자기 나라 갤러리에 소속되어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그를 대견하게 여기면서 다른 전시 부스들을 둘러보고 있던 나의 눈에 갑자기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 ㅇㅇ 맞지?"

"너 이름이 뭐였더라...?"

서로의 안부 챙기기와 짧은 대화가 이어졌고, 헤어지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언젠가 또 만나겠지? 예전에 런던에서 전시회 때마다 만났던 것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말이야."

이 외에도 나보다 훨씬 먼저 다른 전공으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나서 현재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 박사과정을 마치고 독일에서 '포닥'을 밟고 있는 같은 센터(일종의 단과대학) 선배 등 작업실과 프로젝트 전시회와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 '동문수학생'들을 직접 만나게 되거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학교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면서 공부를 한 나로서는 '모교'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새삼 세상이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rt Basel in Hong Kong ⓒ 문호경


5. 한국은 사계절을 가진 나라이다.

섭씨 25-32도의 기온과 80-95%의 습도를 매일 매일 견디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정말 상쾌하다. 봄가을이 짧아져서 이제 우리나라도 아열대 기후 지방이 되었다고 몇 년 전부터 외쳐대던 나이지만, 이제 그런 말은 당분간 하지 않으련다. 한국은 아직도 봄바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