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4.

소피 칼: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Sophie Calle: Qù et Quand?)


인류 역사 이래 '사랑'과 '이별'만큼 우리 인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건 사고가 또 있을까?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갖고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고, 사소한 계기로 인하여 푹 빠져들어 커져버린 마음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며 끙끙대고, 그러다가 내가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로 괴로워하고, 내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가도 자존심과 부끄러움에 망설이며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가 상대방 역시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짜릿함! 그의 고백을 처음으로 들으면서 느끼는 설렘과 환희!!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사랑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오만가지 즐거움을 맛보고 나면 반드시 이별의 과정을 겪게 마련이다. 헤어지자는 통고를 받고(때론 내가 먼저 끝내자고 해 놓고서)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우아하게 마음을 정리하기보다 "쿨 하지 못해 미안해"를 외칠 수밖에 없는 찌질한 상황이 사실 우리에게는 더 많다. 나 역시 그의 호출기에 녹음된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한 기분을 맛봐야 했고, 미니 홈피에서 그의 근황을 한동안 추적하기도 했으며, 폭언 후에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감에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함께 찍었던 사진을 차마 버리지 못해 따로 보관해 두기도 했고(물론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면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잊어버리지만), 주고받은 편지와 이메일, 각종 선물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했으며, 그와 함께 했던 행동반경에서 빠져 나와 나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했다. 한 마디로 내 안에 새겨진 그가 무뎌지고 희미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곰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희망하며 마늘과 쑥으로 연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런데 여기, 저 멀리 구라파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있으니, 다름 아닌 나의 이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보자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소피 칼Sophie Calle(1953~)의 <Prenez soin de vous>라는 작품은, 자신의 파트너(우리나라의 남자/여자 친구 또는 애인 보다는 더 친밀한 관계로, 혼인 관계에 있는 배우자는 아니지만 법률적/사회적으로 보장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가 헤어지면서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을 가수, 무용수, 기자, 판사, 외교관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107명의 여성들에게 보여주고 각자의 전문적인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서 그 이메일을 해석하도록 한 것이다.

Sophie Calle, Take Care of Yourself2009, exhibition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in Whitechapel Gallery, London ⓒ 문호경


작품 제목 <잘 지내기를 바래요>는 소피의 파트너가 보낸 장문의 이메일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것인데, 소피는 과연 이 '잘 지내요'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정말 나랑 헤어지자는 것인지 아님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게 되지만 다시 나랑 잘 해 볼 수 있다는 의미의 메시지인지 이 '헷갈리는' 문구를 작품의 제목으로 삼아, 다양한 여성들이 이별 편지를 읽고 그것에 대해 각자 반응한 것을 기록한 이 작품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9년에 <Take Care of Yourself>라는 영어판으로 다시 제작되어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2009.10.16-2010.1.3)에서 소개되었고, 올 해 우리나라에서도 313 아트 프로젝트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본래 이 작품은 그래픽,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표현된 여성들의 107가지 반응을 볼 수 있는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당시 런던에서 살고 있던 나는 이 작품의 '완전한' 상태를 볼 수 있었다. 발레 동작으로 몸을 풀면서 편지를 읽어나가거나 편지를 노래로 부르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방안을 서성이면서 편지를 읽거나 편지를 읽는 도중에 울어 버리고 심지어는 박박 찢어버리는 여성들까지, 소피 칼의 이별 편지 해석(또는 해독) 작업에 초대된 여성들은 자신의 직업적 개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보편적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이 겪은 이별에 대한 공감의 반응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보여주었다. 운 좋게도(?) 나 역시 그즈음 실연의 상실감과 황망함으로 인해 어서 빨리 괴로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는데, 수십 개의 모니터가 보여주는 여성들의 태도와 반응을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나를 대신해서 슬퍼하고 분노하며 절망하고 미련을 떨다가도 툭툭 털며 일어나 주었고, 연애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나조차도 미처 깨닫지/한 번도 해보지 못한(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이별에 대처하는 기발한 방법들을 몸소 실천해주고 있었다. 특히 전시된 작품 중 한 여의사의 진단은, 마치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려 기어가다시피 겨우 찾아 간 병원에서 맞은 한 방의 주사처럼 내 마음에 쏙 들어와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니오, 저는 당신에게 항기능저하제를 처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당신은 그냥 슬픈 겁니다.
고통을 주는 사건은 반드시 상처를 입히지만, 약물에 의한 해결이 적절한 해법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기에 충분히 강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당신이 행동하고 반응할 수 있는 방책을 당신 안에서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ophie Calle, Take Care of Yourself2009, exhibition <Sophie Calle: Talking to Strangers> in Whitechapel Gallery, London ⓒ 문호경


이번 한국 전시회에는 프랑스 정보부 직원, 탈무드 해석학자, 그래픽 디자이너, 치프 서브에디터, 출판 에이전시, 동화작가, 유엔 여성인권 전문가 등 총 7명의 여성이 해석한 작품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이번 전시회가 <잘 지내길 바래요>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전시장의 규모/비용/작품의 판매가능성 등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해서 몇 작품만을 골라 전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 지내길 바래요> 작품은 단지 위트 있는 위로 한마디("비겁한 건가, 숭고한 건가")나 타인의 이별에 대한 반응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를 통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로부터 사회적, 철학적 해석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든 과정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보편성을 획득했을 때 얼마나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공감을 통해 생성된 에너지가 다시 또 다른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관람객이 자신의 모든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소피 칼의 기념비적인 작품임을 감안할 때, 이번 한국에서의 전시회는 '맛보기'라고 양보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는 곧 '전시의 완결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비단 이번 소피 칼 전시에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기회에 다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다.

한국 전시회에서는 작품 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아 외부 건물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어서, 2009년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시회 때 사진과 자료들을 오랜만에 살펴봤다. 덕분에 나도 간만에 그 시절을 쿨하게(!) 떠올려 본다.

Sophie Calle, exhibition <Sophie Calle: Qù et Quand?> in 313 Art Project, Seoul, 2013 ⓒ 문호경


* "전시에 대한 높은 관심에 호응"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전시회가 5월 10일까지로 연장되었단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시간 내서 한 번 보시길.


*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 소피 칼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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