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1.

비엔날레, 연대를 꿈꾸다



Contemporary Art Journal / 2012 / Vol.11 / pp.34-44
* 편집자 주 - 글의 현장스케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텍스트의 시제는 그대로 살립니다.





비엔날레, 연대를 꿈꾸다

문호경 / 문화산업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가 열린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 문호경


바야흐로 비엔날레의 해였던 2012년이 저물고 있다.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서울은 물론 베니스, 리버풀, 카셀 등 국내외의 굵직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를 다녀온다는 명목으로 외유를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와 출장비에 상응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라 여념이 없는 이때, 필자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광주에서 열린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를 다녀왔다. 오라고 초대한 사람도, 가달라고 부탁한 사람도 없는 그곳을 혼자서 기꺼이 찾아가 보낸 3박 4일간의 일기를 공개한다.


2012. 10. 27. Day 1 비엔날레 큐레이터들, 한 자리에 모이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와 그리스 아테네에 본부를 둔 비엔날레 재단(Biennial Foundation)(1), 독일국제교류재단(ifa, 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 e. V.)이 공동주최한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는 '중심의 이동(Shifting Gravity)'이라는 주제로 앞으로 3일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아시아미술의 확산과 비엔날레의 수적 증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유럽 중심의 모더니즘이 가졌던 목적론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비엔날레가 예술공동체에 영감을 주거나 결속을 다지며 지속적인 기반을 설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기존의 예술관련 기관들이 유사한 모델로 변화하는 추세에서 비엔날레는 아직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거나 실험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관한 논의를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2)

대회 개요가 적힌 브로슈어를 보니 2002년 도큐멘타 11을 큐레이팅하고 2004년 베를린현대미술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활약한 우테 메타 바우어(Ute Meta Bauer)와, 2005년 광저우트리엔날레와 2009년 리옹비엔날레 등 다수의 전시회를 만든 후 한루(Hou Hanru)가 공동감독을 맡아 이번 대회를 진행한단다. 환영 리셉션, 기조발제 및 사례연구, 비엔날레 대표자 회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SeMA Day', 그리고 광주와 서울 및 부산 투어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관장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의 특별 인터뷰 시간이 마련되어 있고, 대회기간 동안 세계 비엔날레들의 출판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는 물론 최정화의 작품도 대회장인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볼거리 들을거리로 충만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의 환영 리셉션은 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열렸다. 퓨전 국악단체의 연주로 문을 연 리셉션에서는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과 강운태 광주시장 및 이번 대회 공동감독인 우테와 후의 환영인사가 이어졌고, 이후 식사와 네트워킹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있던 테이블에는 독일에서 온 저널리스트, 필리핀에서 온 독립 큐레이터, 그리고 서울의 한 문화예술기관 관계자가 자리를 함께 했다. 엉키는 영어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면서,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눈에 익혔다. 비록 베니스비엔날레와 상파울로비엔날레 등 나름 친숙한 비엔날레의 대표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를 함께 준비했다는 우테와 후, 전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르네 블록(René Block) 등 비엔날레라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정상급 큐레이터들과 미술 관계자들이 곳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어제 미리 도착해서 광주비엔날레 전시 관람도 마쳤고, 오늘은 무각사와 대인시장 그리고 비록 영화는 못 봤지만 광주극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도 보고 왔으니, 이제 내일부터는 대회에만 집중하면 되겠다.

세계비엔날레대회 환영 리셉션 Ⓒ 문호경


2012. 10. 28. Day 2 비엔날레 박람회

오전 10시. 대회 개회 선언과, 민주주의 위기 상황 속에서 예술이 가질 수 있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 베이징 칭화대학교 교수인 왕 후이(Wang hui)의 '무엇이 평등인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The Decline of Representation: Another Inquiry on the Equality of What)'이라는 기조 강연에 이어서 첫 번째 사례연구가 발표되었다. '아시아 퍼시픽 파트 a(Asia Pacific Part a)'라는 제목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미술에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현대미술트리엔날레(호주), 다양한 전시 장소에서 일상성을 추구한 시드니비엔날레(호주), 적도(Equator)를 하나의 지역으로 주목하고 있는 족자비엔날레(인도네시아)가 소개되었다. 각 비엔날레 당 10분 정도의 발표 시간이 주어지다보니 사례연구라기보다는 해당 비엔날레의 웹페이지에 들어가 클릭하면서 구경하는 것 같았던 첫 번째 사례발표는, 국제성이라는 맥락 안에서 어떻게 지역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가 각각의 비엔날레가 안고 있는 고민임을 확인한 채 끝나버렸다.

점심 식사 후 이어진 두 번째 사례연구는 '아시아 퍼시픽 파트 b(Asia Pacific Part b)'로, 상하이비엔날레(중국), 타이페이비엔날레(대만), 요코하마트리엔날레(일본), 고베비엔날레(일본) 대표들의 발표였고, 사례연구 마지막은 '건축-디자인-인프라스트럭처(Architecture-Design-Infrastructure)'라는 주제로 모인 홍콩&심천건축/도시계획비엔날레(중국), 광주디자인비엔날레(한국), 광저우트리엔날레(중국)였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한국)를 발표하고 있는 배형민 Ⓒ 문호경

오늘 소개된 사례 중에는 소위 말하는 '창조 도시(creative city)' 마케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비엔날레도 있었고, 2013년에 개최할 행사임을 홍보하면서 관광 자원으로서의 비엔날레를 어필하는 곳도 있었다. 각각의 비엔날레가 가지는 차별성 및 개최에 따른 어려움이나 한계에 대한 심층적인 토론의 자리가 되기에 발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그에 비해 소개되어야 하는 비엔날레는 너무 많았다. 한마디로 '비엔날레 박람회'에 온 느낌이었다. 고비용이 투입되지만 끝나고 나면 철거되고 마는 비엔날레의 지속가능성, 비엔날레 내 각 전시공간들의 상호 유기적 교류,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미술 프로젝트가 대중을 대하는 태도, 미술작품의 엔터테인먼트화가 가져온 부작용, 비엔날레의 상업화, 예술제도로서의 사회적 기능과 비판적 담론 생성 역할, 공적자금의 수혈과 그에 따른 정부 기관과의 관계 설정 등 비엔날레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이슈들이 대회장을 채웠지만 그냥 거기까지 였다. 전 세계의 비엔날레를 선별해주고 주제별로 묶어서 10분씩이라도 엿보게 해준 대회 관계자에게 고마운 마음이라도 전할까? 다리 아프게 박람회 전시 부스를 돌아다니는 대신 편안히 의자에 앉아서 다른 사람이 친절하게 틀어주고 넘겨주는 화면과 음성 설명에 그저 감사해야 할까?

오늘의 모든 사례발표가 끝난 후 이어진(어제까지만 해도 대회 일정표에 나와 있지 않았던) 한스의 인터뷰 대상은, 알고 보니 바로 올해 광주비엔날레 '눈(Noon) 예술상' 수상자인 문경원과 전준호였다. 현재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자신들의 작품이 전체 프로젝트의 일부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는데 긴 시간이 할애되었다. 짧은 전체 토론이 끝난 후, 건너편 호텔에서 제공해 준 저녁을 먹고 참가자들과 함께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 도착했다. 2시간여 동안의 자유 관람이라고 해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문경원, 전준호와 인터뷰 중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 문호경

그런데 난 아직도 이번 대회의 주제인 '중심의 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서구에만 존재하던 비엔날레가 이제 도시화 및 민주화를 통해 변화를 겪은(또는 겪고 있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으니 기존에 서구(특히 유럽) 미술계가 중심으로서 가졌던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인지, 노후하고 쇠락한 비엔날레가 아닌 신생 및 후발 주자들이 현재 비엔날레 판세의 중심이라는 것인지, 비위계적, 대안적, 비판적 성격의 비엔날레가 이제 미술 시장 및 도시 재생의 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여타 미술 이벤트를 멀찌감치 떼어 놓으면서 미술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것인지, 과연 숫자가 많아졌다고 해서 정말 중심이 '이동'했다고 할 수 있을는지.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세계 비엔날레들의 출판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 전시 Ⓒ 문호경


2012. 10. 29. Day 3 무엇을 위해 그들은 모였는가?

오늘 대회도 어제의 '주마간산'식 비엔날레 사례 발표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한층 다채로운 형식과 내용의 비엔날레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었다. 물론 시간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10분씩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미적 세계주의'라는 주제로 "일종의 세상을 만드는 행위이며 세계주의 상상의 일부"(3)로서 예술적 감수성과 주관성을 역설한 호주 멜버른 대학교 교수인 니코스 파파스테르기아디스(Nikos Papastergiadis)의 기조발제에 이어서, '이머전트-얼터너티브(Emergent-Alternative)'라는 제목으로 묶인 네 번째 사례 발표가 있었다. 이머전시비엔날레(체첸공화국), 트빌리시트리엔날레(조지아), 초바이멜라비엔날레(방글라데시), 몽골리아대지아트비엔날레(몽골리아), 코치-무지리스비엔날레(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사례들은 확실히 미술계가 세분화되어가고 있고, 전 세계 모든 지역이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는 잠재적 플랫폼이자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체첸 전쟁 중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작은 작품들을 여행 가방에 담아 전시 상황인 그로니즈와 파리에서 동시에 개최했던 이머전시비엔날레, 예술가들이 유목민적 전통에 따른 캠프 생활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기록물의 형태로 전시하는 몽골리아의 대지아트비엔날레,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과 정부의 검열을 오히려 더 많은 대중과 만나는 기회로 삼아 예술작품들을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보여준 방글라데시의 초바이멜라비엔날레 등은, 비엔날레가 견지했던 사회비판적 기능이 여전히 유효하며 비엔날레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다양한 장소에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서 다섯 번째 사례연구에서는 한국의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소개되었고, 여섯 번째 사례에서는 '아시아와 주변부(Asia and its Margins)'라는 제목 하에 이스탄불비엔날레(터키), 미팅포인트(아랍권), 우랄인더스트리얼현대미술비엔날레(러시아), 사르자비엔날레(아랍에미레이트) 등 러시아와 아랍 및 이슬람 문화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엔날레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사르자비엔날레(아랍에미레이트)를 발표하고 있는 후르 알 카시미 Ⓒ 문호경

사실 이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가장 큰 목적은, '비엔날레 대표자 회의' 개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7년의 역사를 지닌 비엔날레 제도의 역사상 처음으로 비엔날레 기관의 공통적 목표를 논의하고 비엔날레가 사회 내에서 행하는 역할을 토의"(4)하기 위해 마련된 이 회의는 모든 사례연구 발표가 끝난 후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총 45개의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 대표가 참석한 회의 참가자 목록에는 우리나라의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청주공예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경기도자비엔날레, 인천국제여성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프로젝트대전이 올라와 있었는데, 오늘 저녁 열린 대표자 회의에서 '세계비엔날레협회(IBA, International Biennial Association)' 창설이 합의되었다고 한다.(5) "더 강력한 전문적인 협력과 집단, 협동을 통한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가능성과 이익을 함께 논의하고자"(6) 대륙별 대표자를 선정하고 협회 창설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구체적인 활동을 진행하겠다는 비엔날레 대표자회의의 개최 소식은, 이번 대회 참가를 신청한 날부터 나에게 녹녹치 않은 질문들을 던졌다.

비엔날레를 만드는 '노마딕(nomadic)' 큐레이터들(총감독 포함)에 관한 논의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국제적 큐레이터들이 자본주의적 세계화라는 우산 아래 비엔날레를 통해 글로벌 아트 시스템을 만들면서 예술의 다양성 대신 획일화를 초래하고 있고, 해당 국가와 지역의 특수한 상황과 이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상실한 채 비엔날레를 상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7) 반면,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주제와 의미를 매번 만들어내야 하는 '글로브트로팅(globe-trotting)' 큐레이터들이야말로 비실체적인 노동(immaterial labour)을 통해 문화산업 현장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8)

그렇다면 무엇이 비엔날레 대표자들로 하여금 연대를 모색하게 하는가? 앞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될 세계비엔날레협회가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미 보이지 않는 강력한 네트워킹으로 묶여져 있는 그들에게 '느슨해 보이는' 네트워크 대신 '공식적이고' '중심이 되는' 협회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각국을 뛰어다녀야 하는 힘든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일종의 노동조합인가? 재정 부족에 허덕이는 군소 비엔날레를 위해 공동의 기금을 마련해서 구호에 나설 것인가? 반복되는 전시 주제와 제한된 작가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스터디 모임이 될 것인가? 참신한 아이디어에 목마른 '우두머리' 큐레이터들이 젊은 기획자와 예술가들을 모집하는 글로벌 취업박람회의 역할을 할 것인가? 또한 그들이 이루어 낸 국제적 연대의 협상 파트너는 누가 될 것인가? 작품 검열과 까다로운 비자 발급으로 본인들의 당초 전시 기획 내용과 일정을 망쳐버리는 답답하고 몰상식한 정부? 그들의 창조적 사유와 예술성을 이해하기는커녕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경직된 관료 조직? 아님 아직도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의 신천지를 경험해보지 못한 잠재적 세계 시장의 예술가와 대중?(9)


2012. 10. 30. Day 4 다원적 우주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서울로 출발하기 전, 오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 현장을 방문 했다.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가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해에는 예술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해야 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광주는 확실히 정체성을 찾은 듯싶다. "아시아 문화교류와 창작, 교육 및 연구가 이루어지는 문화중심도시의 핵심시설로서 아시아문화의 역동적 에너지를 만들고 발산하는 문화발전소"(10)라는 소박한 설명과 대조되는 7,000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공사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나니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잠시 방문하고 난 후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들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번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공식 일정의 마지막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세 번째 기조발제와 미디어비엔날레 관람 및 만찬이었는데, 발표자는 정치철학자 샹탈 무프(Chantal Mouffe)였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정치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샹탈은, 각종 예술 축제와 비엔날레가 표방하는 '세계주의'를 넘어(Beyond Cosmopolitanism) 문화예술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샹탈은 세계주의가 보편성(universality)을 바탕으로 '인류는 하나'라는 개념을 표방하고 공동체를 강조함으로써 문화예술 영역의 다양성을 희석시킬 수 있음을 지적했고, 이러한 세계주의의 대안으로 '불가지론적 조우(an agonistic encounter)'(11)를 제시했다. 샹탈은 정치와 예술이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참여(engagement) 또는 철회(withdrawal)라는 방식으로 모든 예술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다양한 예술의 비판적 실천이야말로 지배적 합의를 흔들고 모호하게 만들 수 있으며 세계화가 추구하는 문화적 균질화에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세계주의에 내재된 보편성은 문화예술이 추구해서는 안 될 가치이며, 서구의 패권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탈(divergence)과 대결(hostipitality)에 대해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성과 진보를 넘어서는 새로운 모더니티, 탈중앙화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참여하는 다이내믹한 모더니티, 지역성을 추구하면서 '해석(translation)' 또는 '해독(transcoding)'을 통해 서로 공명하고 공동의 이해로 나아가는 관계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위협 속에서 진정한 탈식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샹탈은 피력했다. 따라서 이탈과 대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논쟁 속에서 전 세계 각기 다른 지역의 다양한 예술활동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부조화, 국제문화교류의 구조를 결정짓는 권력관계를 인정하는 불가지론적 조우야말로 비엔날레를, 더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다원적 우주(pluriverse)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12)

10월 30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조발제 중인 샹탈 무프 Ⓒ 문호경

샹탈의 발표를 듣고 난 후, 나는 미디어시티서울 관람과 저녁 만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정동길을 걸어 내려왔다.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린 이래로 현재 150여개의 비엔날레는 다층적인 역할과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진화하고 있다. 정치가, 큐레이터, 스폰서 등 여러 주체들의 이질적인 이해관계가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있듯이, 대회기간동안 나는 비엔날레에 부여된 여러 가지 책임만큼이나 다양한 욕망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광주에 왔으며,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나갈 비엔날레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미완의 과제인 글로칼리티(glocality)와 탈식민주의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까? 그리고 이 3박 4일 동안 스치고 간 인연들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대회 내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 이번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의 공식 영문 표기는 'The World Biennial Forum No 1'이다. 그렇다면 다음 번 대회는 'No 2', 그다음은 'No 3'인지?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 2012 World Biennial Forum


* 주

(1) 본 대회 공동개최를 위해 광주시와 MOU를 체결한 비엔날레 재단의 불분명한 실체와 미약한 대표성에 대해 올 해 초 한 지방일간지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실체 불명 단체와 세계비엔날레 개최라니」, 광주일보, 2012년 2월 14일자.

(2)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브로슈어.

(3)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16.

(4)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86.

(5) 「세계비엔날레협회 창설키로」,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2012년 10월 30일.

(6)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자료집 p.86.

(7) Julian Stallabrass, "New World Order", Contemporary Art: A Very Short Introduc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19-49. 줄리안은 마치 기업가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비엔날레를 옮겨 다니는 큐레이터들 역시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큐레이터들은 세계화된 예술이라는 국제적 기준을 교환하고 글로벌 하이브리디티를 추구하기 때문에, 정작 지역성과 지역민을 고려하지 않고 신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라는 동일한 주제의 비엔날레를 계속해서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8) Pascal Gielen, "The Biennale: A Post-Institution for Immaterial Labour", The Murmuring of the Artistic Multitude: Global Art, Memory and Post-Fordism, Amsterdam: Valiz, 2009, pp.35-46. 파스칼은 새로운 지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해 의미 있는 반응을 늘 반복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비엔날레 큐레이터들이, 지역적으로 매번 다른 노동 조건과 불안정한 상황(특히 임시직으로서의 계약)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9) 이번 대회에서 특별 강연을 한 르네 블록은, 이미 2000년에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에서 열린 첫 번째 비엔날레 컨퍼런스에서 비엔날레 큐레이팅의 윤리와 기준, 책임성을 촉구하면서 국제 비엔날레 위원회(international biennale board)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1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브로슈어 p.9.

(11) 샹탈의 기조 발제 한국어 요약문에 'an agonistic encounter'가 '불가지론적 조우'로 번역되어 있다.

(12) 샹탈 무프, 「세계주의를 넘어」, 제1회 세계비엔날레대회 기조 발제, 2012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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